여자들이 말하는 결혼 이상형 중에 가장 많이 언급되면서도 가장 알 수 없는 기준이 '존경할 수 있는 남자'이다. 나 역시 결혼 전 이상형은 ‘존경할 수 있는 남자’였다.
내가 생각하는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은 이랬다.
책도 많이 보고
산도 좋아하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
그러나 정작 내가 선택한 사람은 책을 싫어하고 등산은 더더욱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소개팅할 때마다 대화가 잘 통했어도 "운동은 어떤 것을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봤을 때,
"좋아하는 운동은 없고 그냥 걷는 거 좋아해요."라고 말하면 무조건 나는 나와 인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유 하나만으로 거절했던 분들에게 내가 잘못해서 벌 받은 것일까? 집을 좋아해도 너무 좋아하시는 분을 만난 것이다. 게다가 여자들이 싫어하는 취미인 '게임'을 사랑해도 너무 사랑하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그때 느꼈다. 이 세상에서 '존경할 수 있는 남자'랑 결혼하는 것은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신랑과 결혼한 이유는 단 하나!
해맑음이었다.
늘 밝고 즐거운 사람이었다. 그냥 옆에 있으면 그의 유쾌함과 엉뚱함에 같이 즐거웠다.
그러나 그와의 결혼을 결심하기엔 많이 불안했다. 나와 취미도 맞지 않았고, 본인이 싫은 것은 싫다고 바로바로 말하는 부분이 나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없어 실제 잠시 헤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헤어져 있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미래지만 그의 해맑은 성격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과 같이 밝고 유쾌한 사람은 만나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이것만은 갖고 싶었다. 이렇게 나의 이상형 '존경할 수 있는 남자' 대신 내 옆에는 '바보스럽게 웃긴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같이 13년을 함께 살다 보니 늘 한결같이 즐겁게 사는 그를 보면서 이제는 진심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신랑이 큰 수술을 받은 일도 있었지만 그때에도 해맑은 모습으로 나를 안심시켰다. 신랑이 불안해하지 않으니 나도 불안하지 않았다. 힘든 일도 신랑과 있으면 코미디가 된다.
간혹 즐거움이 넘치면 나에게도 나눠준다.
그 이벤트가 정말 소소하다.
1) 첫눈 오는 날 아침, 잠든 나를 깨워 창가로 끌고 가서 눈 내리는 풍경 보여주기!
2) 야식을 먹고 싶은 날 편의점 가서 각자 6,000원 이내로 산 재료(식품)로 맛있는 음식 만들기
3) 새벽에 갑자기 바다 보러 가기
4) 아침에 샌드위치 사 오기
5) 스마트폰을 충전 못하고 잠이 들면 대신 충전해 주기
6)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나는 나를 위해 알람 맞춰 주기
7) 뽀뽀 안 하고 출근한 날, 왜 뽀뽀 안 하고 출근했냐고 삐지기
8) 퇴근하면 안아주기
9) 밤새 수다하다 잠들기
10) 내가 좋아하는 노트를 갑자기 사 오기
물론 자주 하는 이벤트가 아니다. 하지만 이 소소한 이벤트로 하루가 즐겁고 신랑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가 있다. 무지 미워지려고 할 때 평소 소소하게 쌓아놓은 이벤트 포인트에서 차감 중이다.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새로움에 13년을 살아도 이 사람이 궁금하다. 그리고 계속되는 그의 해맑음을 존경한다.
*이 글을 신랑에게 보여줬더니 본인이 잘한 게 많았다고 더 생각해보라고 한다. 이쁘다 이쁘다 하니까 거만하다. 적당히 하자 신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