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생 영화리스트 하나쯤 갖고 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경험치가 쌓일수록, 접하는 영화의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내 인생 영화 리스트도 수시로 업데이트 되어왔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데드 맨 워킹』, 『인생은 아름다워』, 『이터널 선샤인』 등이 인생 영화 리스트 최상단에 위치해 있었던 듯하다.
문제는 인생 영화 딱 한 편만 선택하라는 잔인한 질문을 마주할 때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 가장 좋아하는 단 하나를 고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문제여서 인생 영화를 묻는 질문엔 늘 갈등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내게인생 영화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다.
영화『Into the wild』
지금, 내 인생 영화는 『Into the wild』다.
- 써놓고 보니 내 인생 영화 리스트에 숀 펜이 2번이나 등장한다. 한 번은 배우(『데드 맨 워킹』의 사형수 역)로, 한 번은 감독(『Into the wild』감독)으로 -
내 인생 영화 리스트에 오른 다른 영화들이 처음 봤을 때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과는 달리, 『Into the wild』는 처음부터와닿는 영화는 아니었다. 어쩌면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주인공의 결정을 무모하다고 비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편에 나 또한 서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에휴-젊은이,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한 줄 알았냐'라고 했을지도.
훗날존 크라카우어작가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가 쓴 책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Into the wild』를 발견했다. 별 얘기 아닌 이야기를 쓸 작가는 아니니까 '그래, 뭔가 내가 모르는 사연이 있을지도 몰라'하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는데,
'아아, 그래서 그랬던 거고 이래서 이랬던 거구나'
그제야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이야기의 결이 보이는거다.
(기자 겸 작가 '존 크라카우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는 상업등반 원정에 멤버로 참여했다가 히말라야 역사상 최악의 등반 참사를 겪고 구사일생한 전력이 있다. 그때의 일을 바탕으로 쓴 논픽션『희박한 공기 속으로』가 그의 대표작이다. 이 영화는 훗날 제이크 질렌할, 제이슨 클락 주연의 『에베레스트』라는 영화로 각색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영화는 원작의 감동을 따라가기에 한참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 일을 직접 겪은 사람이 책을 썼으니 그럴 수밖에)
책을 보고 사연의 디테일을 알고 영화를 다시 보니 주인공의 겪었을 내면의 갈등, 그가 느꼈을 혼란과 두려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선명히 보였다. 결과적으로 영화를 두 번째 봤을 땐 내가 마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으로 영화에 깊이 몰입하게 됐는데, 그 사이에 내가 주인공이 지향하는 길과 비슷한 길을 걷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리라. 주인공의 감수성이나 그가 거쳐온 환경이 내가 거쳐온 그것과 너무 비슷해서 주인공에게 깊이 감정 이입을 하게 됐던 것도 한몫했을 테고.
그래서였을 것이다. 영화의 결말을 알고 다시 보면서도 주인공에게 '님아 그 길을 가지 마오' 수시로 외쳤던 이유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짙은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이유는, 주인공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한 번이라도 저렇게 뜨거워봤냐고', '적어도 그의 삶이 적당한 시기에 취직하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해서 살만할 때 아파트 하나 장만한 다음 평생 아파트 대출금 갚다 끝나는 인생보다는 낫지 않냐고'말하고 싶었던 이유는.
서론이 길었다. 영화 리뷰니까 줄거리도 간략히 소개해야지. 영화 내용을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줄거리]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국제 빈민구호단체에 기부하고 가족과 연락도 끊은 채 홀연히 여행을 떠난다. 그는 여행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렉산더 슈퍼트램프'라 짓고 산과 계곡, 바다로 모험을 시작하며 히피, 농부, 집시 커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알래스카. 여행길에서 그는 우연히 버려진 버스를 발견하고 한동안 그곳에서 살며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기술들을 연마하는데...
단순한 스토리지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질문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생에 정답이란 게 있는가?"
답이 없는 질문이기에 사람들의 반응도 호불호로 갈렸다. '아름다운 청년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기 위한 아름다운 도전이었다'와 '무모한 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