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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Jan 05. 2022

다사다난 내 인생 1

평소 걷기를 즐겨한다. 거의 매일 밤 걷는다. 작년 한 해 동안 걸었던 걸음수를 걷기 앱으로 측정해봤더니 대략 하루 평균 13000보 이상 걸었다. 나도 왜 걷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좋다. 걷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하루 동안 쌓인 마음의 불순물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나면 마음이 한결 투명해지는 느낌이랄까. 걸을 때는 그날 내 감정에 어울릴만한 노래들을 BGM으로 깔아놓는다. 처음엔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집중하다가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음악은 BGM 역할로 밀려난다. 한 해 동안 매일 밤 하루 한두 시간씩은 걸었으니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걷다가 생각거리가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내가 살았던 삶을, 지금껏 내가 걸었던 길을 되밟아 가는 것이다.


요즘 참 많이 드는 생각이 '남들한테는 평생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 내게는 참 많이도 일어났다'는 것이다. 주 사람들도 말한다. 너한테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고. 그동안 내가 겪었던 사건 사고를 모아 보는 것, 그 사건 사고의 의미를 얕게나마 되짚어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서 글로 옮겨본다.


1.

초등학교 저학년 때로 기억한다. 어머니랑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 지인네 집에 놀러 갔다. 밤이 깊고 이야기가 길어지자 어머니께서 여동생이랑 집 앞에 놀이터에서 놀다 오라고 하셨다. 지금은 밤에 부모 없이 아이 둘이서 놀이터에서 논다고 하면 기겁할 일이지만 그땐 다들 그랬다. 여동생이랑 놀이에 앉아 놀고 있는데 한 청년이 다가와 내게 500원을 주며 새우깡을 사 오라고 했다. 아싸, 이게 웬 횡재냐. 잽싸게 뛰어가 새우깡을 사 왔는데 여동생이 안보였다. 난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어머니께 가서 말씀드렸다.

"엄마, 놀이터에서 어떤 사람이 나한테 새우깡 사 오라고 해서 사 왔는데 놀이터에 그 사람도 없고 여동생도 없네요."

그 순간, 어머니의 표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부모가 된 지금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집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일순간 밖으로 튀어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제야 무슨 큰일이 일어났구나 직감했다.

나중에야 길가 어디선가 여동생을 찾았다. 여동생이 말하길 그 청년이 건물 옥상으로 데려갔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다고 했다. 내 부주의로 내 하나뿐인 여동생이 아동 유괴 사건의 피해자가 될 뻔한 것이다. 그때 만약 이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났다면 난 지금 맨 정신으로 살 수 있었을까. 500원짜리 하나에 눈이 멀어 새우깡을 사러 간 어린 시절의 나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


2.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집은 2층 단독주택에 세 들어 살았다. 여느 아이들처럼 개구쟁이였던 나는 안방 창문틀 위에 올라가 혼자 춤을 추고 있었다. 내 뒤에 방충망이 있었기에 넘어진다 해도 별 걱정은 없었다. 지금 내 기억에 남아있는 건 어느 순간 난 뒤로 넘어졌고, 방충망이 찢어졌고, 창문 뒤 폭이 1미터도 채 안 되는 난간 위에 떨어졌고, 뒤통수에서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날 안고 수건으로 상처를 막고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고, 택시를 겨우 잡아탔는데 택시에도 피가 흥건했고... 그  뒤로는 기억이 안 난다. 다만 그날의 상처는 여전히 뒷머리에 남아있다. 이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느끼는 게, 당시 나는 안방 창문 뒤 난간으로 떨어져 머리만 크게 다쳤는데, 내 키가 10cm만 더 컸더라도 나는 그 난간을 넘어 2층 아래로 떨어졌을 거라는 것. 그랬다면 이 글은 쓰이지 못했겠지. 가끔 출근길에 그 집 앞을 지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3.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족과 함께 물놀이를 갔던 때의 일이다. 어머니랑 튜브를 잡고 놀다가 둘 다 튜브를 놓치고 말았다. 둘 다 수영을 못하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허우적대는 것 뿐이었다. 숨을 못 쉬니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마는데 그때마다 물이 목구멍을 타고 들어왔다. 눈 흐릿하고 숨은 못 쉬겠고 배는 불러오고 이러다 죽는 건가 싶었다. 다행인 건 어머니가 날 간간히 물 위로 들어 올려줬다는 것. 날 물 위로 들어 올린 어머니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고, 나는 이러다 어머니가 위험해지겠다 싶어 어머니를 들어 올렸다. 어머니를 들어 올리면 이번에는 내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낌새를 알아차린 누군가가 우리를 구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숨을 못 쉬는 게 너고통스러워서 10분처럼 느껴졌다. 이때의 트라우마로 한동안 물에 못 들어갔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제주교대)는 수영을 못하면 졸업을 못하는 학교였기 때문에 대학생이 되어서야 졸업하기 위해 물에 다시 들어가게 됐다. 졸업은 물 트라우마도 없앤다. (지금은 이 제도가 없어졌다) 지금은 누구보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아이러니한 아이러니.


4.

초등학교 고학년 때로 기억한다. 한라산 성판악 코스를 오르는데 빈 공터에 사람이 몰려있었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한 사람이 누워있었고 누군가가 누워있는 사람을 부지런히 마사지하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구조를 요청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누워계신 의 표정이 너무 편안해서 난 무슨 일인지도 몰랐다. 다음날 신문기사를 보고 그분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걸 알았다. 내 눈으로 직접 죽음을 또렷이 목격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5.

죽음을 또렷이 목격한 건 저때가 처음이었지만 희미하게 목격한 건 그 이전에도 있었다. 난 아버지 차를 타고 갈 때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앉아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운전석과 조석 사이에 고개를 내밀고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가 막히더니 어느 지점에서 부모님께서 눈을 돌리라고 하셨다. 교통사고 사건이었다. 그때 내가 본 장면이 가끔 떠를 때가 있다. 그 장면을 글로 옮기는 건 적절치 않기에 여기까지만.


6.

이건 나랑 직접 연관된 사건은 아니고 나처럼 바람 잘날 없는 여동생이 겪었던 일이다. 당시 우리 집은 식용 도사견을 수백 마리 키우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집 근처만 가도 수백 마리 도사견과 사료, 배설물이 뒤섞여 내뿜는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금도 아버지는 이때의 기억을 떠올리길 싫어하신다. 무슨 사연으로 그곳까지 떠밀려갔는지 일부러 묻지는 않았다.

도사견들은 거대한 슬레이트 지붕을 한 구조물에서 키워졌다. 문제는 여동생과 친구들이 그 구조물 위에서 놀고 있었다는 것. 슬레이트 지붕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며 여동생이 도사견 우리 속으로 떨어졌다는 것. 이때도 참 다행이었던 것이 주인집 아주머니께서 때마침 그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셨. 감사하게도 바로 흥분한 도사견들로부터 여동생을 떼어내 병원으로 데려다주셨다.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아찔하다. 내 여동생이 더 아찔 했겠지만.


7.

이 사건은 우리 집이 미용실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부모님이 갑자기 미용실을 하게 된 사연은 묻지 않았는데, 얼핏 전해 듣기로는 돈 문제가 얽혀있는 것으로 보였다. 미용실 안에 딸려있는 원룸이 당시 우리가 살던 집이었는데, 우리 집은 여름엔 대놓고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잤다.(에어컨 없던 시절이었음) 때는 1990년대 초반이었고 당시 민심도 지금처럼 흉흉하던 때가 아니었으니 그런 집이 꽤 많았다.

문제는 그 코딱지만 한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 상대가 내 아버지였다는 것. 자다가 부산한 소리에 놀라 눈을 떠보니 내 눈앞에서 도둑이 도망치고 있었고(진짜 내 눈앞 5미터 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버지께서 소리를 지르며 맨발로 뛰쳐나가셨다. (아버지의 운동신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제주도에 체력장이 처음 생겼을 당시 '특급'을 받은 사람이 제주도 통틀어 2명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시다. 그래도 맨발로 뛰쳐나가시면 안되죠ㅠㅠ)

도둑 2인조는 그 와중에 "훔친 거 없어요" 외치며 준비해둔 오토바이로 도망갔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눈앞에서 놓쳤다는데... 놓친 게 다행입니다. 싸움이라도 났으면 걔들은 그날이 제삿날이다. 그러나 그들이 흉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는 보장도 없고.. 아무튼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한동안 그 동네에서 전설처럼 회자됐던 사건이다.


8.

중학생 때 일로 기억한다.  아버지 배드민턴 대회에 따라갔다가 쉬는 시간밖에 나와있었는데  눈앞에 차가 뒤로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후진하나 보다 했는데 운전석에서 꼬마 아이가 내리더니 잔뜩 겁먹은 표정을 하고는 흘러내리는 차 뒤로 달려갔다. 아마도 나처럼 부모님이 배드민턴 게임 나간 사이 차 안에서 장난치다가 차가 뒤로 흘러내렸던 것 같다. 본능적으로 달려가 뒤로 흐르는 차를 몸으로 막았다. 처음 보는 꼬마 아이와 함께.

잠시 후 주위에 있던 어른들이 달려와 상황이 일단락됐다. 별일 없었지만 하마터면 큰 일날뻔한 사건이었다. 그날 뿌듯함에 그날 있었던 일을 일기로 썼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하아.... 다사다난 내  인생...

중학생 때까지만 왔는데도 사건이 이렇게나 많다. 다시 한번 살아있음에 감사다. 쓰다 보니 내가 다 지친다.

다음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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