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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Jan 06. 2022

다사다난 내 인생 2

어제 썼던 글에 이어서 쓴다. 쓰면서도 참 길지도 않은 인생에 별의별 일이 다 있었구나 싶다.


9.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보충학습 때 벌어진 일이다. 쉬는 시간에 밖에서 놀다가 1층 교실로 빨리 들어간다고 창가 위로 점프했는데 점프력이 모자라 창틀 위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여러분, 운동장에서 교실 들어갈 땐 복도를 이용합시다ㅠ.ㅠ) 미끄러지면서 정강이로 착지하고 말았는데 하필 착지한 부분이 창가 모서리라니. 아파죽겠는데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친구가 잡고 깔깔깔 웃는 게 보였다. 아이씨-  뭐라 한마디 하려고 그 친구에게 다가가는 순간, 방금 전까지 자지러지던 친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는 걸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친구의 시선을 따라 내 다리를 보게 됐다. 청바지 무릎 아래 부분이 온통 빨갛게 젖어있었다. 바로 아버지를 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119 불렀으면 해결됐을 듯한데 왜 애먼 아버지를 불렀는지 모르겠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뼈가 보였다나. 어쨌든 응급실로 옮겨져 생애 최초로 응급실에서 수술을 받게 됐는데 첫 질문이 기억에 생생하다.

"주변에 뼈 조각 떨어진 것 없었죠?" ㄷㄷ

이미 헤카진 상처 부위로 마취 주사 바늘이 들어올 때의 고통이란...ㅠ.ㅠ 시간이 지나 그날의 고통은 희미해져 갔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이 있다. 수술실 옆 복도에서 들려오던 한 여자의 울음소리.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울음이라기보다 울부짖음에 가까운 강한 파열음이 한동안 응급실에 울려 퍼졌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그날 다이빙 사고로 숨진 아들의 시신을 확인한 어머니의 울음소리였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누구도 더는 말을 더 보태지 않았다.


10.

드디어 대학교로 넘어왔다. 생애 처음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구했던 사건. 이번 사건은 예전에 글로 써놓은 게 있어서 그 글로 대신한다.

https://brunch.co.kr/@hanvit1102/84


11.

교직 1년 차 연휴 때 우도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ATV를 빌려 타고 유유히 바다 경치를 살피며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뒤에서 ATV 차량이 속도를 내며 우리를 추월했다. 여자 둘이서 소리를 지르면서 나를 앞질러 가길래 기분이 좋은가보다 하고 살짝 옆으로 비켜줬다. 흔한 생각으로 ATV는 바퀴가 4개고 바이크는 바퀴가 2개니까 ATV가 바이크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날의 경우는 달랐다.

우리를 추월한 ATV가 돌멩이 하나를 밟더니 왼쪽 바퀴가 살짝 들렸고 당황한 운전자가 스로틀을 땡겨버렸다. 10미터 앞 커브길을 앞두고. ATV는 무서운 속도로 해안도로를 질주하더니 자동차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놓인 바위를 강하게 충돌했다. 나는 눈앞에서 두 명의 여자가 바닷가로 날아가는 걸 목격했고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워낙 비현실적인 장면이어서 내 ATV를 세워놓고 그들에게 다가가면서도 눈 앞의 장면을 마주하기가 어찌나 겁이 나던지. 제발 안전한 곳에 떨어졌기를. 그나저나 우도에 119는 있으려나...

달려가 보니 한 명은 다행히 모래사장에 떨어졌는데 다른 한 명은 돌 위로 떨어져 신음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상황이 나빠보였다. 당시 내 나이 스물다섯.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빨리 119에 전화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다행히 ATV가 바위를 충격하는 소리를 듣고 주위에서 일하던 분들이 바로 사고 장소로 달려와주셨고 119가 올 때까지 사고를 수습해주셨다. 사고 장소에서 한 아주머니가 남긴 말씀 한마디가 귓가를 맴돌았다. "에구, 이런 사고에는 머리에 피가 나부러야 괜찮은건디 걱정이네."

사고당한 분들이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따로 뉴스에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실 거라 믿는다.

훗날 나는 우도에서 나고 자란 여자를 만나 결혼했고 지금도 우도에 갈 때면 사고 장소를 지나친다. 장모님 말씀으로는 지금도 종종 ATV 사고가 일어난다고 한다.


12.

20대 중반 즈음에 겪었던 일이다. 주상절리 앞 도로를 걷고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오토바이 CT100을 타고 가시다가 도로 옆 이탈 방지석을 들이받더니 공중으로 날아갔다. (도대체 이런 사고는 왜 내 앞에서만 일어나는 걸까ㅠ.ㅠ) 연세가 있으신 분이셔서 걱정하며 달려갔는데 다행히 잠시 후 툭툭 털고 금방 일어나셨다. 이렇게 쓰니까 별 일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그 할아버지께서는 정말 운이 좋으셨다. 할아버지는 공중에서 체조 선수처럼 앞으로 1회전을 하고 떨어지셨는데 정확히 1회전을 채우고 떨어졌기 때문에 팔로 1차 층격 흡수를 할 수 있었고, 떨어진 장소가 흙과 잡풀이 우거진 곳이어서 2차 충격흡수가 됐던 것 같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13.

내 꿈의 신혼여행지는 뉴질랜드였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어려서부터 뉴질랜드를 동경했다. 아내는 터키를 신혼여행지로 가고 싶어 했다. 뉴질랜드는 다음에 언제든 갈 수 있으니까 터키를 신혼여행지로 선택했다. 터키에서의 신혼여행 마지막 날, 일정을 모두 마치고 호텔에서 TV를 틀었는데 뉴스 화면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대지진]

하늘의 뜻이었던 것 같다. 역시 아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으로 나뉘는데 보통 신혼여행은 남섬을 주로 간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남섬 여행의 주요 거점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뉴질랜드 출국,귀국 장소로 선택하는 곳이다. 만약 아내 말 안 듣고 뉴질랜드 가자고 고집했다면, 일정상 신혼여행 마지막 날 즈음에는 크라이스트처치에 있었을 확률이 높.... 여기까지만 하자. 몇 년 후 크라이스트처치로 여행을 가게 됐는데 아직도 복구가 진행 중이었다. 그 정도 심각한 지진이었을 줄이야. 다시 한번 아내와 하늘에 감사를.


14.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인증샷 찍기는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2020년 1월을 도전 디데이로 잡고 친구랑 여행사 예약까지 해놨다가 친구에게 일이 생기는 바람에 취소한 바 있다. 2020년 1월, 어느 날 친구 몇몇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살아있냐?"

"살아있으니까 전화받지"

"그건 그렇네ㅋㅋ 너 1월에 안나푸르나 간나고 안했냐?

"아, 그거? 예약까지 다해놨다가 친구가 취소해서 나도 못 갔어. 그런데 안나푸르나는 갑자기 왜?"

"검색창에 안나푸르나 쳐봐"

뉴스 검색창에 안나푸르나를 검색했다.

[안나푸르나 눈사태로 한국인 4명 실종]

이번에도 하늘이 도왔다. 내가 가려던 일정을 확인해보니 내가 만약 그때 안나푸르나로 갔다면 하루 이틀 차이로 사고 지점을 통과한 다음 눈사태가 일어났을 터였다. 사고는 안당했을테지왜 하필 그 날? 쯤 되면 전생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슬슬 궁금해진다.


15.

몇 년 전 눈앞에서 교통사고 사망사고를 목격했던 사건. 인생의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이 뿌리째 흔들렸던 그때 그 사건. 그날의 기록은 다음 글로 대체한다.

https://brunch.co.kr/@hanvit1102/38

 


이번 글은 3부작으로 간다ㅠ

쓰면서 나도 놀라고 있다. 이 모든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는 게. 아직 몇 개의 사건이 더 남아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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