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다.영화같은영화는 너무 영화 같아서, 소설 같은 소설은 너무 소설 같아서 몰입이 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다큐멘터리는 완벽한 대안이었다. 인물 다큐, 자연 다큐, 시사 다큐 등 다큐멘터리의 하위 장르는 실로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산악 다큐멘터리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비범한 이야기는 나를 실존하는, 또는 실존했던 주인공 곁으로 데려다준다. 난 그저 화면 밖에서 그들을 응원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에는 화면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있다. 주인공이 히말라야에 있으면 나도 히말라야에 있는 듯한 현장감이 좋고,'영화가 끝나야 주인공의 생사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에'영화 내내 흐를 수밖에 없는 긴장감이 또 좋다.
그렇게 나는 산악 다큐 매니아가 되었다. 산악 다큐멘터리 신작이 나올 때마다 챙겨보는 게 나의 소소한 기쁨이었다. 『던 월(Dawn wall)』도 그렇게 접했다.
(워밍 업)
산악 다큐를 보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닦아야한다.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게 되니까.이 영화는 더 그렇다. 영화 내내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인 "도전자는 성공했을까? 그들은 지금 살아있을까?" 에 대한 답을 영화의 끝부분에 던져놓기에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손에 땀을 쥐고 보다'
긴장감을 나타낼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진부한 영화의 진부한 클리셰 같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내게는 절대 진부한 표현만은 아니다. 실제로 이 영화도 손에 땀을 쥐고 봤다. 내가 손의 힘을 풀어버리면 도전자도 암벽을 움켜쥔 손을 놓아버릴 것 같아서 나는 손을 몇 번이고 더 세게움켜쥐었다. 움켜쥔 손에는 이내 땀이 맺혔다. 당신이 이 영화를 끝까지 본다면 손에 땀을 쥐고 본다는 표현이 '진부한' 표현이 아니라 '진실된' 표현임을 증언하는 또 한 명의 증인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만한 건, 이 영화가 끝났을 때 내 몸에서 나온 액체가 손바닥의 땀뿐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게 눈물이었는지 아니면 이마에까지 맺힌 식은땀이었는지는 비밀로 하고, 일단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 없는 어느 클라이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던 월(Dawn wall)』은 단순한 이야기다. 두 남자가 지금껏 세계의 누구도 오르지 못했던 '던 월'이라는 암벽을 오르는 이야기다. 단, 여느 다큐멘터리가 그렇듯 이야기를 '도전 정신이 강한 클라이머가 '던 월'이라는 이름의 암벽을 오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로 끝내지 않기 위한 몇 가지 서사가 개입한다.
1
던 월은 암벽 이름이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암벽 엘 캐피탄에서 새벽빛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라 하여 ‘던 월(Dawn wall)’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2
주인공 토미 콜드웰은 왼쪽 검지 손가락 2마디가 없다. 어린 시절에 사고로 손가락 2마디를 잃었다. 산악 등반가는 암벽에 미세하게 튀어나온 돌출부를 손가락으로 움켜쥐는 힘으로 온몸의 체중을 견뎌내야한다. 산악 등반가에게 손가락 마디 일부가 없다는 건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여기서 포기하는 건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답게, 도전한다. 지금껏 손가락 마디를 온전히 가진 산악 등반가 누구도 오르지 못한 전인미답의 암벽에, 손가락 2마디 없이.
역시 다큐멘터리 주인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토미가 던 월에 도전하기로 한 이상 토미의 2마디 없는 손가락은 불가능을 더 불가능하게 보이게 만드는 극적 장치에 불과하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Impossible is nothing)"
아디다스의 그 유명한 카피.
이 카피의 주인공으로 토미만한 사람이 또 있을까?
3
주인공 토미 콜드웰은 죽음의 위기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경험이 있다.등반가들이 키르기스스탄 산악 등반 훈련 도중에 반군 테러리스트에게 인질로 납치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의 주인공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은 그에게 삶은 '덤'으로 주어진 선물이었다. 그랬기에 이처럼 목숨을 건 도전을 감행할 수 있었던 건지도. '보너스처럼' 주어진 삶인데 뭔들 못하겠나.
이 사건은 주인공에게 비극이기도 했지만, 끝내 희극이기도 했고 딜레마이기도 했다. 내가 살려면 누군가를 죽여야만 했던 딜레마. 그 딜레마를 함께한 파트너와의 질긴 인연이 영화 마지막까지 이어지는데 이게 또 킬포인트다.
(스포가 될까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4
토미는 던 월을 혼자 오르지 않는다. 볼더링(암벽 등반의 한 장르로 로프 없이 바위 덩어리를 오르는 행위) 분야의 세계 최고 실력자 케빈 조거슨이 함께 한다.
즉, 세계 산악 등반계에서 이미 만렙을 찍은 클라이머 둘이서 함께 등반한다. 그렇다고 등반이 쉬워지느냐? 그건 아니다. 어쨌든 암벽을 오르는 건 결국 '나'이기 때문이다.
등반은 전체 코스를 수십 개의 코스로 나누어 진행된다. Pitch 1에서 시작해서 Pitch 2에 닿으면 쉬었다가 다시 pitch 3에 도전하는 식이다.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르는 도전이기에 중간중간 포터렛지에서 잠을 자면서 도전을 이어간다.
드디어 도달한 Pitch 15. 바로 여기가 등반의 클라이맥스이자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Pitch15는 그동안 누구도 이 코스를 정복하지 못한 이유다. 그만큼 극악의 난이도로 유명한데, 중간에 수평으로 2미터가량을 점프해서 암벽에 살짝 튀어나온 돌출부를 손가락끝으로 잡아내야 하는 포인트가 나온다. 보고 있으면 스파이더맨이나 가제트가 아닌 이상 이게 가능할까 싶다.여기에도전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들이 제정신인가 싶다.
놀랍게도 둘 중 한 명이 Pitch 15 등정에 성공한다. 이 말인즉슨, 나머지 한 명은 실패했다는 뜻이다. 그는 계속 실패한다. 낮에는 휴식을 취했다가 그나마 접지력이 강해진다는 새벽에 몸 안의 모든 집중력을 끌어올려 도전을 이어가는데도 실패를 거듭한다. 촬영진과 그의 성공을 기다리는 또 다른 주인공의 한숨 소리가 깊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전의 성공 가능성은 낮아진다. 도전자의 체력이 고갈되기 때문이다.
먼저 등정에 성공한 주인공은 딜레마에 빠진다. 나 혼자라도 올라가야 하는 걸까? 이때부터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때마침 던 월에 찾아온 새벽의 여명만큼이나 아름다운 기다림이 펼쳐진다. 일부러 이런 스토리를 만들었나 싶은, 영화도 이렇게 시나리오를 짜지는 못하겠다 싶은, 가히 영화의 화룡점정이다.
5.
영화 내내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영화의 모든 장면들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찍은 걸까?"
내 기억이 맞다면, 영화 내내 보이지 않던 촬영진들의 활약은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등장한다. 그들의 도전 뒤에는 도전자의 손끝 움직임 하나하나를 숨죽이고 촬영하던 숨은 영웅들이 있었다. 도전자들이 쉴 때에도 그들은 쉬지 못했다. 도전자의 쉬는 모습을 촬영해야 하니까.
도전자의 성공과 실패에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던 그들은 우리 사회의 그늘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수많은 영웅들의 은유 같아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나는 다만, 한가지 선명한 사실을 건져올려 그들의 역할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영화도 없었다.
잠깐, 여기서 빠지면 섭섭할 사람들이또 있다. 그들의 도전이 인터넷과 방송사 뉴스를 통해 알려지자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응원단. 도전자와는 일면식도 없는 일회성 조직이 멀리서 망원경으로 지켜보며 도전을 응원한다. 나는 이내 그들과 하나가 된다. 도전자를 화면 밖에서 응원하다가 어느 순간엔 나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있음을 발견하는 기쁨. 이게 또 다큐의 매력이다.
그래서 도전은 성공했냐고? 그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시길. 물론 인터넷 검색으로도 도전의 성공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으나 직접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의 끝에 당신은 손에 뭔가를 쥐게 될 것이고, 나는 손에 땀을 쥐고 본다는 표현이 '진부한' 표현이 아니라 '진실된' 표현임을 증언하는 또 한 명의 증인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