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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Nov 15. 2018

경계를 허무는 힘, 책

책이 사람을 만든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     


사람의 인생을 말할 때 10대, 20대, 30대와 같이 10년 단위로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편의상 그렇게 구분하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간다고 또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간다고 우리 삶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기에 그렇다.


내 인생에 있었던 두 번의 급격한 방향 전환이 10년 단위로 이뤄진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을 뿐이다. 남들이 이미 느끼고 깨달았던 것을 제때 배우지 못하고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던 나는 20대에 이르러서야 삶의 방향을 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가 책과 친해질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는데, 당시의 나는 모든 것을 직접 겪지 않고 이야기 하는 것은 예고편만 보고 영화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일생에서 직접 겪어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평생 우리가 사람을 만나봐야 얼마나 만날 것이며, 걸어봐야 얼마나 많은 길을 걸을 수 있겠나? 그때 책을 많이 읽었더라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다양한 길을 걸을 수 있었을 텐데, 싶지만 후회는 금물! 

지금이라도 책과 친해지게 된 것을 감사하기로 한다. 역시 후회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행복해지는 것이다지금 행복한 사람에게는 과거의 후회되는 일들도 지금의 행복을 위한 징검다리가 된다.


30대에 이르러 우연히 책에 빠지게 되면서 나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났다. 물론 그사이 결혼과 자녀의 탄생 등이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부분도 있겠지만, 가끔 책을 읽기 시작한 전과 후 내 삶에 생긴 변화를 느낄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책은 어떻게 내 삶을 바꿨을까.     




생각의 경계를 허물라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너비만큼 그 경계에 생각의 성(成)을 쌓는다. 

지적 호기심이 많아서 더 많은 것을 알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스스로 경계를 넓혀 그 자리에 생각의 성을 새로 쌓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스스로 경계를 허물고 넓혀 생각의 성을 새로 쌓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는 반면, 타인의 말에 의해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자신과 정치 성향이 다른 누군가를 설득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자기 생각을 바꾸는 순간 지금까지의 삶이 부정당한다고 느끼는 걸까? 그들이 쌓은 성은 무너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나 또한 타인과 직접 대화를 하며 내 의견을 굽히거나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달은 경험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런데 책에서는 생각의 성이 무너지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쓴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직접 내 논리를 공격당한다면 기분이 상해서라도 더 굳건하게 지켰을 생각의 경계선이, 책을 읽으며 저자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점점 희미해진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은 좋은 예이다. 

 ‘도대체 어떻게 긍정이 배신할 수 있다는 걸까?’ 

평소 긍정적인 사고는 행복한 삶의 필수 조건이라는 굳은 신념이 있었기에 못 미더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저자는 일상생활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생활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행복한 삶의 필수 요소라고 말한다. 다만 그녀는 타인에 의해 의도된 긍정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그녀는 암에 걸려 치료를 위해 참가한 한 모임에서 암에 걸린 것도 축복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사람들의 말에 물음표를 던진다. 그때부터 사회에 만연해 있던 긍정 마케팅의 실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결국, 근로자들이 환경 탓, 사회 구조 탓을 하지 않고 오직 일에만 집중하게 하려고 긍정 마케팅이 필요했고, 이 흐름이 경제 불황을 타고 하나의 산업으로까지 발전됐음을 깨달았다. 쉽게 말해 ‘당신이 회사에서 잘린 것은 당신 잘못이니 남 탓하지 말고 그마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결국, 무분별한 긍정주의는 전 세계에 닥친 위기에 눈을 감게 만들고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림으로써 비판적 사고를 약화시킨다고 그녀는 말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내가 긍정에 대해 가졌던 생각은 이미 폐허가 되어있었다. 책은 이렇게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왜 청춘은 아파야 하는가?     


『긍정의 배신』을 읽고 떠오른 책이 하나 있었다. 몇 년 전 서점가를 강타했던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 많이 팔린 만큼 저자의 의도처럼 많은 사람이 이 책을 통해 위로를 받았으리라고 본다. 나는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책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많이 눈에 띄는 걸보니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한둘은 아닌 듯하다. 잠깐 평론가 모드로 전환해볼까. 


책 제목부터 잘못 지었다. 왜 청춘은 아파야 하는가? 청춘이 아플 수밖에 없는 거라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었겠지만, 책에는 그들이 왜 N포 세대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그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하려면 돈 없고 빽 없는 청춘들의 고민을 들으려는 노력을 더 기울였어야 했다. 


조지 오웰이 하층민의 삶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직접 노숙자 생활을 하고,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노동의 배신』에서 미국 저임금 노동자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고발하기 위해 직접 저임금 노동자 생활을 자처한 사례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보편적인 청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자가 책에서 풀어놓은 자신의 청춘 시련 극복기(행정고시 실패와 강사 생활 등)도 요즘 청춘들의 출구 안 보이는 현실에 비할 바는 아닌 듯하다.


돈 없고 빽 없는 청춘들이 아플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 속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하는 것은 헛된 희망을 심어줄 뿐이다. 현실이 시궁창인데 인생이 다 그런 거라고, 시궁창에도 볕은 들 거라고 백날 말해봐야 청춘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시궁창인 현실을 만든 데 기성세대로서 책임을 느낀다고, 우리 같이 현실을 바꿔나갈 방법을 찾아보자고 얘기하는 게 맞다. 


본의 아니게(?) 베스트셀러를 디스하고 말았다. 『긍정의 배신』을 읽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지금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을 것이다. 하나의 책을 읽고 허물어진 생각의 폐허 위에서 바라봤더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그 경계에 다시 생각의 성을 쌓았을 뿐이다. 


때로 책은 생각의 성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사실 내가 가진 생각 중에는 소수 의견에 해당되는 것들이 많다. 남들이 많이 걸어서 걷기 편해진 길은 일부러라도 가지 않으려는 심리가 있어서 그런지 찬반이 팽팽하게 맞붙는 사회 문제에서 나는 소수의 편에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소수의 입장에서 다수를 설득하는 것은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힘들어서 가끔은 다수의 편으로 갈아타고 싶은 유혹이 생길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책에서 나와 생각의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힘을 얻었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세상은 언제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꺼이 불편해짐을 감수했던 소수에 의해 조금씩 진보해왔다고     



같이의 가치     


책을 읽으면서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나만 생각하는 삶에서 우리를 생각하는 삶으로 삶의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기 전의 나는 나만 잘 살면 그만인 사람이었다. 사회에 불합리라고 부조리한 일을 보게 되더라도 내 일이 아니면 뒤돌아보지 않았고,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애써 외면했던 우리 사회와 세계의 어두운 그늘을 다시 마주하게 됐다. 이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온갖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게 됐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불의와 싸우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의 희생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면,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내가 바라는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주어진 의무가 아닐까 하는 부채 의식이 생겼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아니라 가끔 옆도 볼 수 있는 넓은 시야와 잠깐 멈춰서 뒤도 돌아볼 줄 아는 여유가 생겼고, 내 힘이 미약하게 느껴질 때마다 옆 사람에게 함께 가자고 손을 건넬 수 있는 용기가 샘솟았다. 


나만 잘살면 되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 책은 뜻하지 않은 숙제를 나에게 던져줬지만, 소풍 가방에 숙제를 담는 기분은 가벼웠다. 어차피 소풍도 혼자 떠나면 재미없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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