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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Dec 15. 2018

오직 셋을 위한 우화

별 시덥잖은 단편 소설


   

한 남자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앞에 두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이제 숨을 몇 번만 더 들이마시고 뱉어내면 그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터였다. 그때 그의 흐릿해지는 시야 사이로 어두컴컴한 물체가 보였다.

죽음의 신(사신)이다!!



죽음의 신이 말했다.

“너에게 특별히 한 번 더 살 기회를 주려고 한다. 대신 조건이 있다. 네가 살았던 삶을 그대로 한 번 더 사는 조건이다. 싫다면 지금 끝내도 된다. 지금 끝내는 것을 택한다면, 몇 초 후에 너는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말로만 듣던 죽음의 신이라니, 내가 벌써 저세상으로 건너간 걸까?

온 힘을 다해 눈을 떠봤더니, 아직은 이 세상이다.


남자는 어렵게 말을 뗐다.  

“다른 사람으로 태어날 수는 없는 건가요?”

죽음의 신은 다른 사람과의 형평성을 위해 그것은 절대 안 된다는 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잠시 고민하던 남자가 말했다.

“그러면 제가 겪었던 고통도 다시 겪어야 한단 말이잖아요?”

죽음의 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되받아쳤다.

"제가 겪었던 고통을 다시 견뎌낼 자신이 없습니다. 여기서 끝낼께요.”

죽음의 신은 뒤돌아서더니 어딘가로 떠나려 했다. '의식'을 집행하기 위함이었다.


그때였다. 남자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잠깐만요! 제가 살았던 삶을 다시 살아야 한다는 건 제가 만났던 사람들도 다시 만날 수 있단 말이잖아요?

그러면 제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단 말이네요?”

죽음의 신이 뒤돌아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말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세요. 대신 제가 고통의 터널을 지날 때 이 고통의 끝에 아내와 두 딸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 알려주세요. 그래야 제가 삶의 끈을 놓지 않을 테니까요.”       



     

가끔 두 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내 삶이 이 두 아이를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구나 싶을 때가 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던데, 지금껏 살아오며 내가 했던 무수히 많은 선택 중 사소한 선택 단 하나만 달라졌더라도 만나지 못했을 인연, 이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다.

기적이라는 단어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두 딸의 탄생으로 나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걱정거리를 어깨에 지게 됐고,

둘을 나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 내야 할 숙제를 안게 됐지만,

내 기꺼이 그리 하리라. 아빠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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