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취준생' 매거진 발행을 시작하며
오늘도 막막해 하고 있을 너희들에게
시간이 참 빠르다.
막 20살이 되어 이제는 좀 놀아보자 했더니, 술 몇 번 마시고 전공시험 몇 번 치르고 대학축제 몇 번 즐겼을 뿐인데 벌써 또 취업준비라는 묵직한 현실이 날 압박한다. 이제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해란다. 게다가 남들 다 가지고 있는 그럴싸한 스펙하나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날고 뛰는 sky도 취업이 어렵다는데 나는 웬걸 지방대에다가 스펙도 변변찮으니 도저히 안 될 것만 같다.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게 대부분 sky를 제외한 취준생들의 마음이 아닐까.
나는 부산에 있는 사립대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여대생이었다. 지방사립대, 공대, 거기다 정말 몇 안되는 여자. 말 그대로 쓰리콤보였다. 취업에 있어서 안 좋은 조건이란 조건은 다 갖춘 셈이다. 그래서인지 취업준비를 시작할 때 모두들 입을 모아 말했다. 안 될 거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어렵다는 말로 빙빙 돌려 '지방대 여자 공대생은 좀 힘들지 아무래도. 실험실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 거기 좀 있다가 연계된 업체로 추천서 써 줄 테니까 가보는 건 어때?', 혹은 '좀 눈을 낮춰서 생각해보자. 나중에 계속 떨어지면 너도 지쳐서 그때는 눈을 낮춰서 볼 거야.' 등의 희한한 어투로 두 멘트 중 하나를 랜덤으로 뽑아 나를 달래며 얘기했었다. 계속 듣고 있자 하니 짜증이 났다. 왜 자꾸 안 된다는 거야. 그건 내가 해 볼만큼 해보고 진짜 안 될 때 내가 스스로 판단하는 거지. 왜 내 미래를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결정하려고 하는 거야.
그 날 이였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뜨겁고 묵직하게 올라오는 감정을 느낀 것이. 편견을 깨버리고 싶었다. ‘나’라는 사람이 당당히 해 내보고 싶었다. 타이르듯 한 말이 무색하리만큼 당당히 해 내 볼거라고. 한 켠엔 오기를, 또 다른 한 켠엔 용기를 심었다. 그렇게 나도 시작했었다.
오기와 용기만으로.
이랬던 내가 어떻게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몇 개씩 합격해 골라서 갈 수 있는 기적이 있었을까?
나는 앞으로의 발행하는 이 글들이 그 기적의 첫 걸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 자씩 써내려갔다. 나도 같은 길을 지나와봤고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 길인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 현실적으로 이 글을 읽을 취준생들에게 와 닿는 나만의 이야기들을 해 주고 싶었다. 학벌, 스펙 등으로 대기업이란 큰 벽 앞에 이미 기가 죽어 갈팡질팡 하는 취준생들을 위해 누나, 언니의 마음으로 ‘어떻게 이런 쓰리 콤보를 극복하고 대기업 취업이란 험난한 문을 열 수 있었을까’에 대해 진심을 다해 눌러 담아 매거진을 발행 할 예정이다. 좋은 조건이 아니었던 나의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그 과정에 있어 나도 이렇게 해낼 수 있었던 것을 보며 너희도 한 줌의 오기와 희망을 가지고 ‘그래, 까지껏 나도 한 번 해보자. 별 거 있나. 밑져야 본전이지.’라는 용기를 쥐어주고 싶다. 막연히 헛된 이상과 희망을 쥐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취준생일 때도 가장 싫었던 것이 너무 당연한 말을 하면서 열심히 하라고 이상만 읊어대는 말들이었다. 그렇기에 하나도 와 닿지 않았던 그런 뻔하디 뻔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가장 큰 취약점인 학벌과 스펙을 이길 수 있는 ‘진짜 다름’은 어떤 것인지 똑똑히 알려주고 싶다.
나는 5년 전부터 청춘 멘토로서 그리고 모의면접관으로 지방대의 여러 취준생들을 만나고 있다. 그들에게 현재 가장 가깝게 직면해 있는 취업에 대한 고충들을 나누면서 그들이 겪었던,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겪었던 우리들만의 어려움들을 어떻게 당돌하게 헤쳐 나가면 좋을까에 대한 생각들도 함께 써내려가 볼 것이다. 그 어려움 속에서 함께 고민하고 전략을 세우면서 결실을 거둔 친구들도 꽤 많았다.
부디 이 글을 읽고 있을 그대들도 그 중 한 사람이 되어 내가 이 글을 쓰길 참 잘 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그날이 오기를.
그대들이여, 건투를 빈다.
아니, 함께 건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