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
눈물의 흔적이 오래가면, 상처가 진하게 남는 법.
엄마는 나를 데리고 상담을 받으러 갔다.
분위기는 편안하며 나른한 상담 장소였고
선생님께서도, 마음속 이야기를 잘 이끌어낼 수 있도록 천천히 다가와주셨다.
“요즘, 힘들거나 고민이 있나요?”
그 말을 듣자마자 울컥하기 시작했다.
“요즘, 새로 배정받은 학교와 친구 관계 때문에 힘들어요.”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 몇몇 친구들이 나에 대한 루머를 이야기하며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나둘씩 토로할 때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고
그런 상황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얼버무렸다.
돌아가면 할 말이 엄청나게 많은데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한 내가 후회스럽기도 하다.
선생님은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이야기를 함께 공감해 주시며
종료 후, 엄마를 부르셨다.
토끼 눈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눈.
밖을 나서자 엄마를 마주쳤다.
나의 상태가 어떻고, 문제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셨겠지만 이후 궁금해서 엄마에게 물어봤다.
“선생님께서 뭐라 하셔?”
“생각하는 게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하시더라. “
고지식??
융통성??
처음 들어본 단어라 이게 무슨 말인지, 좋은 말인가? 의아했다.
찾아보니, 고지식은 ‘성격이 외곬으로 곧아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고
융통성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뜻한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과연, 고민이 가득한 나에게 타당한 말일까?”
그러나, 얼추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넓게 바라보아야 할 세상을 한쪽으로만 치우쳐져 보고 있으니.
이때였다.
조그마한 노트에 일기를 쓰고 핸드폰 메모장에 시를 써나가기 시작한 것이.
딱히, 누구를 보여주려고 쓴 것도 아니고
오직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지금에서야 다시 꺼내본 일기장은 우울로 가득했다.
내가 이런 단어들을 쓸 정도로 까마득히 빠져있었구나를.
매번 같은 일상 속, 집에서의 생활은 늘어만 갔고
뒤로 던져둔 개학은 어느새 찾아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