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보드 & 자유 관광
"삿포로 어때? 삿포로"
반쯤은 충동적이었고 반은 진담이었다.
물론 나는 갈 생각으로 꺼낸 말이었지만 실제로 동참해줄 이가 있을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많으면 나 포함 3명 정도?
"음. 좋아요."
다들 좋다고 이야기 했지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걸 알고 있었다.
걸리는 게 많았다.
경비의 문제도 그랬고 무엇보다 그네들에게는 시간이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짜가 정해지고 항공권을 확정 지은 사람은 총 7명.
함께하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고
같이 여행할 마음으로 두근거리는 마음도 있었다.
벌써 몇 년째 그대들과 매년 겨울을 보냈는데 이제 드디어 홋카이도 여행이라니.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이란 생각보다 까다로운 것이어서 의외로 잘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할 경우엔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결정할 수 있었던 건
지난 3년간 매년 겨울, 거의 매주말을 함께 먹고 즐기고 같이 자고 했던 그 시간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꽤 바람직했다.
김해 국제 공항에서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오전 8시 45분 출발이었다.
7명이라는 단체 여행객이면서도 티켓팅도 각자, 보딩도 각자, 심지어 좌석배정까지 각자 알아서 했던 우리였다.
그래서인지 막상 비행기에 타고 보니 마치 혼자 떠나는 여행같은 느낌도 들었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었지만 전부 따로 타고 있어서 홀로 떠나는 기분.
개인의 성향을 존중하고 간섭하지 않는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서 더 편한 듯했다.
그러면서도 신발도 똑같은 것으로 맞춰 신고 다니는 건 또 무슨 성향인 건지.
그래도 무언가 함께 하자고 말을 꺼냈을 때
"그래."
하고 동참해주는 이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일본 이라면 늘 비행 1시간 이내의 거리만 다녔던 나로서는
2시간 30분 이상 걸리는
홋카이도가 꽤 먼 것처럼 느껴졌다.
내내 저가형 항공만 타고 다녀서 기내식이 나오는 거리가 오랜만이기도 한 탓이었다.
무엇보다 몇 년 동안 가보고 싶었던 그 곳에 드디어 가게된다는 두근거림에
기내에서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른 새벽에 공항에 가야 해서 전날 밤 2시간 밖에 못자서 피곤한 몸이었음에도
기내에서 한숨도 잠들지 못했다.
제법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이라 떠나는 건 익숙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설렜던 건 역시나
새로운 장소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와- 눈 봐라."
벌써 5년 째 겨울이면 거의 매주 강원도에서 살다시피 하기 때문에
눈은 꽤 익숙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원도와는 다른,
정말로 눈으로 파묻힌 이 도시를 보고 있자니
그 동안 내가 본 눈세상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태어나고 지금까지 부산에서 자라고 살았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만큼 눈구경하기 힘든 지역에서 살아서 그런지
삿포로에서 만난 눈세상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
마치 동화 속의 겨울 나라에 와 있는, 딱 그 기분이었다.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예약해둔
렌트카 사무실로 향했다.
렌트카 수령처와 공항 간에는 제법 거리가 있어서
무료 송영 버스를 운영 중이었다.
혼자였더라면 비용때문에라도 감히 렌트카를 빌릴 엄두를 내지 못했을 텐데 여럿이 모이니 이런 점도 좋았다.
혼자서 끙끙 앓기 보다 여럿이 찾은 정보를 모으니 외국인 전용 고속도로 패스(HEP)도 알게 되었다.
일본은 다른 비용에 비해서 교통비가 끔찍하게 비싼 편이다.
대중 교통도 마찬가지였고 렌트카를 이용할 때 기름값에 비해 고속도로비도 꽤 비싼 편이었다.
특히 여행객일 경우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으니 이동 경비가 제법 부담일 수 있었다.
그런 여행객에 한해 고속도로 1일-7일에 이르기까지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패스는 꽤 유혹적이었다.
렌트카 주문할 때 국내 하이패스와 같은 기능을 하는 ECT 카드를 함께 대여하고
HEP 패스도 같이 주문하니 훨씬 일이 쉬워졌다.
7명이 차량 2대를 렌트했다.
큰 차 한대를 렌트할까도 생각했지만 7명 모두가 스노우보드 장비와 여행 가방이 있었기에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사람도 나눠서 탈 수 있고 짐도 나눠서 적재할 수 있도록 2대를 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드를 실을 수 있도록 1대는 왜건형 차량을 빌렸는데 이건 정말 신의 한수였다.
운전석 뒷좌석을 그대로 트렁크와 연결해서 보드 7개를 전부 실었다.
이 차에 사람 3명에 장비 전부, 그리고 다른 차에 사람 4명이 타니 딱 맞을 정도였다.
공항에서 차량에 나눠 타자마자 7명의 일행은 두 파로 나뉘었다.
관광파와 보드파.
7명중 5명은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애초에 순수하게 북해도에서 보드를 타기 위한 여행이었으므로 모두들 2박 3일 동안
스키장에 박혀 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낯선 곳에 대한 욕심은 그 곳을 둘러 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일깨웠고
일정에 여유가 있는 나와 토끼, 그리고 보드에 열정을 불사른 황군을 제외한
다른 일행은 첫날엔 관광을 하겠다고 했다.
앞서 이야기 했듯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사람끼리의 모임이었다.
따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 전혀 제약을 두는 법도 없었다.
차량은 두대 였으니 당연히 관광팀과 보드팀으로 나누어서 이동 가능했다.
각자의 일정을 마치고 차후 숙소에서 만나기로 한 다음 렌트카 사무실에서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저 쪽 일행 중에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걱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들이니 괜찮을 듯 싶었다.
처음 운전은 일본에서 몇 번의 경험이 있는 내가 할까 했는데 황군이 하고 싶다고 했다.
어차피 이들이 떠나고 난 이후 2박 3일은 나 홀로 운전해야 했으므로 그러라 했다.
핸들을 넘겨 주며 주의할 점으로 딱 한 마디만 했다.
무조건 왼쪽 차선으로 붙으라고.
하지만 습관은 무섭다.
그렇게 몇 번이나 주의를 줬건만 황군은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오른쪽 차선으로 들어갔다.
역주행이다.
"야, 이 자식아! 왼쪽이라고!!!!!!!!"
부아아아아아아앙.
클락션을 울리고 지나가는 반대편 차량에 식은 땀이 절로 흘렀다.
시내를 벗어나기도 전에 사고부터 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한국에서는 13년차 베테랑 운전수였던 황군이 일본에 와서는
개초보 드라이버로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는 순간이었다.
우측 통행인 한국
좌측 통행인 일본
한국은 핸들이 왼쪽
일본은 핸들이 오른쪽이다.
이는 기어 변속기도 오른쪽이 아닌 왼쪽에 있어서 습관적으로 오른손을 내리려다
문짝에 손을 부딪히고 나서야 아차 하게 되는 순간이 몇 번이나 생겨난다.
황군의 운전은 고속도로에 접어 들어서야 안정화 되었다. 휴우.
공항에 도착해서 점심도 못 먹고 흩어진 상황이었다.
일본에서 고속도로 서비스 에리어(우리나라로 치면 휴게소)에 들를 수 있는 건
자가용 여행 때나 가능한 일이어서 우선 배를 채우고 가기로 했다.
왼쪽부터 쇼우가야끼(생강구이) 정식, 새우튀김계란소바, 부들부들달걀오야꼬동(오야꼬-부모자식이라는 뜻, 치킨과계란이 같이 있어서?)
북해도에 도착하자 마자 첫식사였다.
더군다나 부모자식이라는 엄청난 작명 센스에
놀라워하면서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시장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 곳 식당의 식사가 괜찮았는지 몰라도
꽤 맛있는 음식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시장기를 채우고 나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부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쌓인 눈에 눈이 휘동그레졌다.
저러다 지붕이 내려 앉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울 만큼 수북하게 쌓인 눈이었다.
꽤 많은 눈을 보고 달려왔음에도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저렇게나 높이 쌓이도록 많은 눈이 내린다는 게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쌓인 눈을 치울 새도 없을 정도로 우리가
그 곳에 머무는 동안에도 내내 눈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이렇게 내리니 뭐 치우는 게 소용없겠구나 싶었다.
아무리 치워도 30분 지나면 다시 내려서 쌓인다.
또 치워도 이내 쌓이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눈을 치우는 게 의미없을 법도 하겠다 싶었다.
내가 있던 보드팀의 목적지는 테이네 스키장이었다.
테이네는 삿포로 시내에서 차로 대략 30~40분 정도 떨어진 지역으로
1972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였다고 한다.
시내에서 가까우니 오후 잠깐 타고 나와서 관광팀과 합류하기에 적당하리란 계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