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보드 & 자유 관광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얼어 버린 길로 인해 속도를 낼 수 없었고
도로엔 차도 많았다.
이리 저리 차선을 변경하면서 다니기엔
차도 도로도 익숙하지 않은 길이었다.
피곤하고 배도 고팠다.
촘촘하게 흩어져 내리는 눈발에
자칫하다간 위험해질 것을 알았다.
익숙치 않은 빙판길의 운전은 황군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고 오히려 더 안전 운전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황군을 알고 지낸지가 거의 7,8년이지만
이렇게 안전 운전하는 건 첨 보는 거 같아."
농담이지만 농담이 아닌 말이었다.
시내에 들어서도 눈덩이는 마찬가지였다.
치운다는 건 불가능했고 그저 한쪽으로 쌓아두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처지라는 걸 실감했다.
2010년 겨울.
뉴욕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자기 집 앞 눈을 치우지 않으면 벌금을 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 곳 북해도는 어떨까?
북해도 현지 주민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치우는 거 자체가 무의미한 것 같은 도시였다.
우리의 숙소는 번화가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조용한 주택가였다.
처음에는 번화가 내에 있는 비지니스 호텔룸 4개를 예약했었다.
"나 따로 말고 다같이 자고 싶어."
한가족 처럼 어울려서 오글오글 지내고 싶다는
쏭양의 말에 따라 Airbnb 싸이트를 검색했고 적당한 아파트를 전세낼 수 있었다.
마침 2대의 무료 주차도 가능해서 2대를 렌트한 우리에겐 딱이었다.
방 4개(다다미방 1개포함)에 거실 하나, 부엌도 하나, 침대는 8개
7명인 우리에겐 충분히 넉넉했다.
처음 예약할 때만 해도 10명의 인원이었는데
3명이 개인 사정으로 빠지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지만
짐도 있고 하니 서로 편하게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일본의 보통 집 규모 치고는 꽤 넓은 편이었다.
7명이서 오글오글 뒹굴어도 좋았다.
Airbnb 시스템의 특성상
집주인 얼굴 한 번 보지 못하지만
깨끗하고 정성스러운 집 구조에 반했다.
다들 저렴하고 싸게 좋은
숙소에서 묵는다며 좋아했다.
원래 계획이라면 이 곳 숙소에서 관광팀과 합류해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틀어졌다.
관광팀의 교통 사정이 좋지 않아 합류가 늦어졌고 결국 식사를 마친 다음 스스키노에서 만나기로 했다.
삿포로에 지인이 사는 토끼의 설명으로는
스스키노 지역이 삿포로 시내의 최대 번화가라고 했다.
부산으로 치면 서면 정도쯤일까라고 짐작해본다.
이런 저런 일로 일정이 어긋나 저녁 식사가 늦어졌다.
스스키노에 도착하고 보니
빼도박도 못하게 이미 저녁 8시 57분이었다.
꽤 많이 늦은 저녁식사인 셈이었다.
그 곳에서의 저녁 식사는 토끼의 강력한 추천으로 "스프카레"를 먹기로 했다.
무언가 계획하고 찾아 보는 게 귀찮았던 나는 이번 여행에서 토끼의 존재가 가장 고마웠다.
아니었다면 전부 내가 검색하고 정하고 해야 했을 텐데...
지금도 Special thanks to 토끼.
무엇보다 몇 년을 같이 다니면서 이번 여행에서 처음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놀라울 정도로 나와 토끼의 입맛이 비슷하다는 사실이었다.
토끼가 맛있다고 한 음식은 내 입맛에도 훌륭했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토끼의 입맛을 무조건 신뢰하기로 했다. 엄지 척!
서른 번이 넘는 일본 여행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점 하나는
줄 서기이다.
우리가 아무리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아도
어쩔 수 없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우리가 찾아간 가게는 스스키노 내에서도 꽤 유명한 맛집이었고
우리가 줄 서고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점원이 나오더니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 될 거라고 했다.
휴우.
실제로 우리 뒤에 온 손님은 더 이상 준비된 재료가 없다는 말로 줄 설 기회 조차 갖지 못했다.
가게 문밖에서 대기 30분, 가게 문 안에서 대기 15분
총 45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먼저 주문한 것은 역시나,
삿포로에 왔으니 삿포로 맥주를 마시는 건 당연한 거고,
그 중에서도 북해도 한정판으로 삿포로 클래식이 있다고 했다.
한정판 이라고 하면 또 마음이 동하는 것이 북해도에 머무는 동안
내내 클래식만 마시고 다녔다는 이야기.
북해도에 와서 처음 먹어본 스프카레.
맛있다.
맛있다는 말 이외 또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맛있다.
추위와 배고픔에 떨었던 우리를 한순간에 행복감에 젖어들게 만드는 맛이었다.
약간 칼칼한 것이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고 갖가지 채소와 묽게 양념된 카레맛 스프.
그 국물까지 싹싹 긁어 밥에 비벼 먹을 정도였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감에 도취된 우리는 관광팀에게 물었다.
"니들은 뭘 먹었니?"
"우리... 편의점 빵, 우유, 삼각 김밥..."
"뭬야?"
이럴수가!
어떻게 그런 일이!
관광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거리 착오와 계산 착오로 제때 도착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먹는 것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고로케 인 줄 알고 자판기에서 뽑아 먹은 음식이
자그마치 야끼 오니기리 - 간장 바른맨밥.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일본 여행이 처음인 황군은 제쳐 두고
토끼나 나나 편의점 음식은 한정판 롤케이크 정도나 사러 갈까
그 외는 무조건 맛집 투어가 목적인 사람들인지라 그들이 매우 애잔했다.
한국이었더라면 분명 이리 저리 다니면서 맛집 찾아 다녔을 미식가인 그들이
일본어 까막눈이라 그 고생을 했다는 말에 토끼와 나는 눈을 마주 보았다.
"언니, 이거 포장해갈까요?"
"아까 재료 다 떨어졌다고 하던데 일단 물어나 보자."
역시나 재료가 다 떨어졌다는 말은 손님을 끊어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우리가 4인분을 추가 포장 주문했음에도 재료 없긴 개뿔.
우리가 먹은 맛있는 음식을 그들에게도 먹여줄 수 있어 행복했다.
다음날은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다같이 루스츠 리조트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다 같이 북해도에 가서 "스노우 보드를 즐기자" 였다.
루스츠 리조트는 숙소에서 2 시간 반 정도 거리였으므로 서둘러야 했다.
생전 안 먹던 아침 식사도 마쳤다.
7명이 하나의 욕실에서 씻고 준비 하다 보니
예정했던 시간보다 30분은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탓에 온몸에서 카페인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리고 마침 루스츠로 향하는 길에 구세주 스타벅스가 있었다.
심지어 드라이브 스루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구경삼아 들르기로 했다.
어차피 늦은 거 20분 더 늦는다고 루스츠 리조트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일본에서의 카페가 처음인
관광팀 + 황군은 사진 찍느라 정신없었다.
나는 그 와중에 콜렉션을 하고 있는
시티 텀블러를 구입하고 있었고
각각의 주문을 받아서 대신 주문해주고 있는
우리 막내 토끼.
장하다.
막내가 능력도 좋으니 이 언니는 참 뿌듯하구나~
커피까지 손에 들었으니 이제 드디어 루스츠로 향하여 진짜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