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보드 & 자유 관광
흐려진다 싶던 하늘은 이내 펑펑 함박눈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제설되지 않은 눈은 부드럽기 이를데 없었고
미끄러지듯 보드가 흐르기 시작했다.
흐트러지는 눈꽃송이가
꿈처럼 눈앞에서 바스라졌다.
왔다가 스쳐 지나가고 또 다시 왔다가 사라지며
우리를 현실에서 유리 시켰다.
"이렇게 눈이 많은데도 전혀 뭉치지가 않아. 모글이 다 깨진다."
한국의 눈은 다지고 다지고 또 다져져서 아무리 보드로
깨고 부수려 해도 턱하고 엣지가 박혀 넘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초절정 파우더라 하는 루스츠의 눈은 아니었다.
뭉쳐 있어도 바스러지고 미끄러져 위에서 조금만 프레스를 주어 누르면
얼마든지 깨어 부수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초행길이고 루트를 잘 모르다 보니 혹시나 헤어지게 될까봐
갈림길에서 뒤따르는 일행을 기다렸다.
"나 보드가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는 운동인 줄 몰랐어."
강원도에서는 늘 소극적이었던 쏭양이 희열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응. 보드는 재밌는 놀이야."
이 추운 겨울에, 새하얀 눈 속을, 바람처럼 가로질러
땀 흘리며 내려 가는 것.
그 곳에서 신나게 즐겁게 웃으며 순간을 즐기는 우리는 행복했다.
아니 사진을 보고 있는 지금도 그 때가 떠올라 행복하다.
몇 번의 라이딩을 반복하는 새에 눈도 그쳤다.
단 하루 동안 폭설도 경험하고 맑은 날씨도 경험한 우리였다.
하단까지 내려 왔다가 다시 올라가고 하는 새에도 몇 번이나 날씨가 바뀌었다.
하지만 정말 신이 나서 웃고 즐기는 우리에게 날씨란 아무런 장애물도 되지 않았다.
평소 체력이 딸려서 늘 쉬어야 한다며 한 발 물러 서 있던 쏭양 조차도
즐거움에 범벅이 되어 뒹구는 동안 아쉬운 시간이 흘러 갔다.
한참을 뒹굴다 먹는 식사는 어찌그리도 맛있는지.
루스츠에서 반가웠던 것 중 하나는 이렇게 커버가 씌워진 리프트였다.
다른 스키장은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내가 주로 기점을 두고 활동하는 강원도 정선의 스키장은
리프트가 오픈형이다.
대부분 정상까지는 관광 곤돌라는 통해 이동하지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곤돌라가 많이 흔들려 위험하다는 이유로 운행이 중지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별 수 없이 리프트를 이용해야 하는데, 아.. 정말 춥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아무리 꽁꽁 싸매도 뼛 속을 쑤시는 칼바람에 온몸이
오그라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게 추위에 얼고나면 몸도 마음도 온통 얼어 붙어 지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커버형 리프트가 있다면,
최소한 정면에서 불어오는 눈보라 바람만 막아주어도
이용객의 마음을 훨씬 더 녹여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소비자에 대한 배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점심을 대충 챙겨 먹고 잠깐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보드 타임.
드넓기 짝이 없는 슬로프.
사람이 분명 제법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가 전세낸 양 사용할 수 있는 슬로프.
한국에선 절대 주말에 있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워낙 스키장이 많고 넓은 땅이라 가능한 이야기일 테지만.
이런 스키장 만큼은 좀 부러웠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도 시간은 꼬박 꼬박 흘러 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곳곳에 따라 리프트를 탑승할 때 보드를 다리에 끼우지 않고
들고 타도 상관없는 곳이 종종 있었지만 일본은 내가 들른 세군데 전부 끼운 채 탑승이었다.
사실 보드를 들고 타다 놓치기라도 해서 아래에서
스키나 보드를 타고 있는 사람에게 추락하기라도 하면 위험하긴 하다.
하지만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한쪽으로 보드를 타고
리프트를 타고 내리라고 하는 것도 위험이 있긴 하다.
실제로 우리 일행 중 아직 보드를 끼우고 타는 것에 익숙치 않은
쏭양이나 박군 같은 경우 혹시 넘어지면 어쩌나
겁먹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처음 보드를 타던 초보자 시절 경기도 근처의 어느 스키장에서는
리프트에서 분명히 내렸는데
그 돌아가는 속도가 내가 내려 가는 속도보다
더 빨라서 도로 리프트에 태워진 적이 있었다.
"꺅!!!"
얼마나 놀랐던지 속으로 진짜 욕했다. -_-;;;;
무슨 이런 X같은 경우가!
덕분에 그 곳에서는 잘 가던 리프트를 세우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는데
이 곳에서는 그럴 염려는 없었다.
리프트에서 내려서 안전지대로 내려오는 경사도가 매우 낮고 부드러워서
걱정했던 쏭양도 박군도
아주 안정적으로 리프트에서 내려서 제대로
착지해서 일행에 합류할 수 있었다.
"오오~ 잘했어~"
"나 강원도 가서도 한 발로 계속 탈 수 있을 거 같아~"
쏭양, 완전 자신감 얻어서 신난 얼굴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해는 서산 너머로 스믈스믈 기어 가고 있었다.
아쉬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은 점차 붉게 빛나고 어느 새
밤이 다가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