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보드&자유 여행
금강산도 식후경.
비에이 구경도 물론 식후경이다.
내가 비에이를 오고 싶었던 것을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트리,
나무 한 그루를 찍고 싶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맛집 투어를 절대 빼놓을 수는 없다.
그리고 비에이의 소문난 맛집이라는 이 곳,
쥰페이도 절대 지나칠 수도 없었다.
비에이에서 그렇게 유명한 맛집이라는 쥰페이.
우리가 조금 이른 점심에 도착하긴 했지만 한가로운 분위기였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갔을 때에는
언제나 오픈전부터 길게 늘어선 줄만 보았기 때문에 사실 좀 당황했다.
"어라? 비에이에는 정말 사람이 없나 봐."
"흠, 그러게요. 참 한가롭네요."
"그럼 토끼야, 난 밖에서 사진 좀 찍고 들어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서 자리잡고 주문 해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난 이미 토끼의 입맛을 신뢰하고 있었으므로
알아서 잘 주문하려니 생각했다.
모든 메뉴의 주문을 토끼에게 일임한 나는
쥰페이 식당 주변 스케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발견했다. 가로등 뒤 오렌지색깔 건물에
하얀색 라인을 따라 숫자가 씌여져 있는 것을.
어라? 왜 숫자가 붙어 있지 하다가 아하! 싶었다.
워낙 적설량이 많은 이 곳은 어디가 얼만큼 쌓여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벽에 숫자로 표기해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가 간 그 날은 눈이 2층까지 쌓여 있었다.
혼자 한 5분 정도? 사진을 찍고 놀았을 뿐인데
쥰페이 식당 주차장으로 차가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라라?"
여기 한가로운 거 아니었어?
불안해진 나는 사진이고 뭐고 일단 배부터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당장 철수하고 서둘러 식당안으로 들어섰다.
한가로울 거라 예상했던 식당 안은 생각 외로 이미 손님으로
절반이상 차 있었다.
"우와, 나 차가 줄줄이 들어오는 거 보고 깜짝 놀라서 들어왔어."
"저도 놀라서 후다닥 시켰어요."
그렇게 우리가 시킨 메뉴는 그저 사진만 봐도
군침이 좌르륵 흐르는 새우튀김 덮밥과 미트튀김덮밥.
으아...;
이건 진짜 먹어본 사람만 그 느낌을 알 것 같은!!!
거대한 새우튀김의 그 탱탱한 새우살과 미트볼 튀김의 그 육즙을...
으.... 왜 나는 이 밤중에 이 글을 쓰면서 자학하고 있는 건지 정말 모를 일이다;;
(내년에 또 가려고 티켓을 미리 끊어 놓은 걸 정말 위안삼으며 내년에는 두 번 가야지.
아니 세 번 가야지 하고 생각해 본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온 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검색했다.
친절한 어느 블로거가 크리스마스 트리의 map code를
올려놔 주어서 아주 편하게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며 마침내 도착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사유지이다.
광고에 나와서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사유지라서 그 주변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해두어서 좋은 것 같다.
특별히 펜스를 쳐둔 것도 아니고 경계를 서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도 들어가지 않아서 누군가 발자국을 남기지 않아서 좋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누군가 들어가서 발자국을 남겼다고 할지라도 다음날이나 그 다음날이면
눈이 모든 것을 덮어서 그 잘못을 지워주었을 테지만.
그래도 내가 갔을 때에는 정말 아무 발자국도 없었고
사람도 우리 밖에 없었다.
그래서 세상을 다 얻은 그런 기분이었다.
마음이 포근해졌다.
그 동안 내가 살면서 저지른 잘못한 일 모두 덮어주는
따스한 마저 느껴져서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이깟 나무 한 그루가 뭐라고.
새하얀 눈밭에 고고하게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그래도 하염없이 바라보게 만드는 신기한 힘을 가진 나무였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각도를 놓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토끼야, 넌 그냥 찍사보다 모델을 하는 게 낫겠어."
"네. 언니."
그렇게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하는
토끼의 화보 촬영이 시작되었다.
물론 여기 브런치에 올린 사진은 전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다.
(나의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아직 현상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가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려고 할 무렵
구름이 걷히면서 해가 나오고 있었다.
이제 떠나야할 시간이라고 가라고 등을 떠미는 기분이었지만
토끼가 하고 싶어하는 오후의 보딩을 위해
떠나야 할 시간이긴 했다.
모처럼 일본에서 구입한 오가사카 보드가 있으니
탄탄한 라이딩을 위해서 달려주어야 할 타이밍이긴 했다.
아쉽긴 하지만 비에이 관광은 여기서 접어야 할 때였다.
미련이 남아야 또 올테고 저 크리스마스 트리는 내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나를 지켜봐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 보자구."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는 차를 돌려 나왔다.
이제 홋카이도에서 마지막 스키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