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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언제 왔다 가셨나?
일선사 관스님을 그리며
by
정한별
Jun 8. 2021
아버지 언제 왔다 가셨나?
북한산 보현봉 아래
무학대사 세웠다는 일선사 있지
주지 관觀스님 산봉우리 옮겨 다니며 사람을 피하는
젊은 미친놈이 칼바위에 올라 불어대는 나팔 소리만 들리면
선방에서 엉덩이를 하늘로 솟고 우셨다네
"아이고 젊은 놈이 뭐가 그리 슬픈 곡조를 뽑노?"
어느 날 아버지는 내가 보고파
산을 올라 나를 찾으셨다지
그날도 역한 땀 냄새를 피해
다른 봉우리로 달아나
어느 틈엔가 숨어 숨죽여 등산객
하산을 숨죽여 기다렸지
뭐 별로 냄새도 없고 자극적이지도 않은 절
특히나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것은 최상이었지
도인이 따로 있나?
흘러나온 땀 냄새엔 온갖 증오와 밤꽃 냄새가 자명한걸
조금 더
자극적이지 않은 시간에 들어가면
금세 알아볼 수 있는 걸 뭐
요사체로 기어들어온 밤 고양이
비닐을 뒤집어쓰고 아버지를 부르러 바위를 찾는
고아들이, 원력으로 남은 부처芙萋에 향하는 악다구니와
삿대질을 조금만 더 참아내면
별, 그 하늘만 보이는 미명未明에 안길 수 있는 걸 뭐
종소리 뎅그렁 거리면 어슬렁 기어나가 차린 듯 만 듯 한 밥상에 앉아
조용히 밥을 퍼먹으면 그랬지
공양주가 슬며시 밥을 더 얹어주곤
그런데 아버지 다녀가신 날에는 하루
음성을 오랜만에 들었어 관觀스님
"한별이 아버지 왔다 가셨다!"
"네"
점심이면 그 말만 되풀이하시는 게야
오일쯤 지났나?
건망증이 심하신 승僧네는 이렇게 물으셨지
"한별이 아버지 언제 왔다 가셨지?"
손가락을 꼽으며
"오, 오일 전에 다녀가셨네요."
연달아 십오 일이 지나갔어
"한별이 아버지 언제 왔다 가셨나?"
아 좋았는데
나를 가만 좀 내버려 두라지
부아가 치민 밤중
저 늙은 네가 도대체 왜 저 말만 반복할까를 컴컴한 눈으로
읽어보려 했어
그러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서
마당에 달려 나가 엎어져
통곡을 했더랬어
아, 아버지의 사, 산을 오르는 거친 숨소리가
아들이 보고 싶었던 영혼이 몸을 끌어
민들레처럼 헉헉, 산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가
깨알 같은 글자로 읽히는 것이었지
마당이 아버지인 양
끌어안고 끌어안고 끌어안고
울었어
다음날 관觀스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어
아버지가 다녀가신걸, 보름 만에야 만나는 아둔한
나에게 무엇을 더 물으실꼬?
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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