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연구소>의 권철 교수는 와세다대학 오므라와 함께 윤동주 시인의 묘소를 찾아낸 분이다. 특히 오므라는 윤동주 연구에 있어서 일부 조선어계 학자들에게 ‘은사’ 칭호를 받고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원한 한 맑은 청년에게 소금물 주사, 생체실험으로 그 정기(精氣)를 살해한 적국敵國의 학자, 한국으로 돌아와 난 아버지 앞에서 부끄럽다며 통곡을 했다.
얼마 후, 아버지는 권철 교수와 나를 동행하여 윤동주의 묘를 향하여 걸어가고 계셨다. 비가 온 뒤 묘소로 올라가는 길은 발에 진흙이 달라붙어 무거운 아령처럼 발걸음을 잡아 끈다. 권철 교수와 아버지의 발은 ‘왕발’로 변해가고 있었다.
“묘소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 길을 닦는 것을 모색한답디다.” “아니요, 안됩니다. 이 길,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윤동주를 찾는 사람들은 이 길을 밟고 찾아가는 것이 맞습니다.” “옳아요, 정선생!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길이 좋다고, 겉모습이 꾸며졌다고 그이의 정신이 기려지는 것은 아니지요.” (훗날, 윤동주 시인의 동생 윤혜원, 윤일주 선생, 윤일주 선생의 아드님 윤인석 선생들과 만나 윤동주 시인의 묘소로 가는 길은 있던 그대로 두자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신 것으로 안다. 그러나 가끔 속뜻 다르게 '윤동주 묘소에 염소똥 뒹굴어'라는 기사가 간간이 나기도 한다.)
뒤에서 두 분의 대화를 듣자니 시절 인연을 따라 걸으며, 대상이 걸어간 길 위에서의 '만남'에 관하여 생각이 깊어진다.
한참을 둘러보고, 다시 명동촌 윤동주의 생가와 그 옆집 문익환 목사의 생가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앉아 말없이 바라보고 계시던 아버지 갑자기 “흑흑!” 흐느끼신다.
“아, 아버지 왜요? 왜 우셔요?” “아 똑같다! 저 굴뚝이, 닭이 모이 쪼는 마당이, 초가지붕이, 한국의 시골집과 무엇이 다르니, 고향이 아닌 고향과 집이 아닌 집에서의 삶이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것이었겠니. 그, 그 마음이 들려온다.”
그렇다. 고향이 아닌 고향과, 집이 아닌 집, 에서의 이 생활! 시인 윤동주는 '서시'로 왜인들을 영원한 죄인으로 만들었고, 자신을 죽인 일본 원수들의 손목을 부여잡고 목놓아 울어, 부끄러움도 없는 파렴치한들을 비출 맑은 거울을 마련해 놓았다.
온정의 거리에서 원수를 만나 손목을 잡고 목놓아 울던 청년을 기리며, 적국 왜화 핏줄에 혈관을 이어 고향집을 온통 말아먹은 저 혈통에 핀 꽃잎을 잡고 목놓아 울어본다. 거울아!
*아버지는 연세대학과 함께 신촌 교정, 일본 도지샤 대학에 윤동주의 시비(詩碑)를 제작하고 , ‘윤동주 백일장’ 등을 개최하여 줄곧 윤동주를 기리는 일을 하고 계신다.
화원(花園)에 꽃이 핀다. -
-윤동주-
개나리, 진달래, 앉은뱅이, 라일락, 민들레, 찔레, 복사, 들장미, 해당화, 모란, 릴리, 창포, 카네이션, 봉선화, 백일홍, 채송화, 다알리아, 해바라기, 코스모스-코스모스가 홀홀이 떨어지는 날 우주의 마지막은 아닙니다. 여기에 푸른 하늘이 높아지고 빨간 노란 단풍이 꽃에 못지않게 가지마다 물들었다가 귀또리 울음이 끊어짐과 함께 단풍의 세계가 무너지고 그 위에 하룻밤 사이에 소복이 흰 눈이 내려, 내려 쌓이고 화로에는 빨간 숯불이 피어오르고 많은 이야기와 많은 일이 이 화롯가에서 이루어집니다.
독자 제현! 여러분은 이 글이 씌어지는 때를 독특한 계절로 짐작해서는 아니 됩니다. 아니,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철로나 상정하셔도 무방합니다. 사실 1년 내내 봄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 이 화원에는 사철내 봄이 청춘들과 함께 싱싱하게 등대하여 있다고 하면 과분한 자기 선전일까요.
하나의 꽃밭이 이루어지도록 손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고생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딴은 얼마의 단어를 모아 이 졸문을 지적거리는 데도 내 머리는 그렇게 명석한 것이 못 됩니다. 한 해 동안을 내 두뇌로 써가 아니라 몸으로써 일일이 헤아려 세포 사이마다 간직해두어서야 겨우 몇 줄의 글이 이루어집니다. 그리하여 나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일수는 없습니다. 봄바람의 고민에 짜들고 녹음의 권태에 시들고, 가을 하늘 감상에 울고, 노변(爐邊)의 사색에 졸다가 이 몇 줄의 글과 나의 화원과 함께 나의 1년은 이루어집니다.
시간을 먹는다는(이 말의 의의와 이 말의 묘미는 칠판 앞에 서보신 분과 칠판 밑에 앉아보신 분은 누구나 아실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히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루를 휴강한다는 것보다(하긴 슬그머니 까먹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다 못한 시간, 숙제를 못해왔다든가 따분하고 졸리고 한 때, 한 시간의 휴강은 진실로 살로 가는 것이어서, 만일 교수가 불편하여서 못 나오셨다고 하더라도 미처 우리들의 예의를 갖출 사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들의 망발과 시간의 낭비라고 속단하셔 선 아니 됩니다. 여기에 화원이 있습니다. 한 포기 푸른 풀과 한 떨기의 붉은 꽃과 함께 웃음이 있습니다. 노우트장을 적시는 것보다 *한우통동(汗牛充棟)에 묻혀 글줄과 씨름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진리를 탐구할 수 있을런지, 보다 더 많은 지식을 획득할 수 있을는지, 보다 더 효과적인 성과가 있을지를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나는 이 귀한 시간을 슬그머니 동무들을 떠나서 단 혼자 화원을 거닐 수 있습니다. 단 혼자 꽃들과 풀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습니까. 참말 나는 온정으로 이들을 대할 수 있고 그들은 나를 웃음으로 맞아 줍니다. 그 웃음을 눈물로 대한다는 것은 나의 감상일까요. 고독, 정숙도 확실히 아름다운 것임에 틀림이 없으나, 여기에 또 서로 마음을 주는 동무가 있는 것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화원 속에 모인 동무들 중에, 집에 학비를 청구하는 편지를 쓰는 날 저녁이면 생각하고 생각하던 끝 겨우 몇 줄 써 보낸다는 A군, 기뻐해야 할 서유(書留)(통칭(通稱) 월급봉투)를 받아 든 손이 떨린다는 B군, 사랑을 위하여서는 밥맛을 잃고 잠을 잊어버린다는 C군, 사상적 당착에 자살을 기약한다는 D군...... 나는 이 여러 동무들의 갸륵한 심정을 내 것인 것처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나는 세계관, 인생관, 이런 좀 더 큰 문제보다 바람과 구름과 햇빛과 나무와 우정, 이런 것들에 더 많이 괴로워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이 말이 나의 역설이나 나 자신을 흐리우는 데 지날 뿐일까요. 일반은 현대 학생 도덕이 부패했다고 말합니다. 스승을 섬길 줄을 모른다고들 합니다. 옳은 말씀들입니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나 이 결함을 괴로워하는 우리들 어깨에 지워 광야로 내쫓아버려야 하나요. 우리들의 아픈 데를 알아주는 스승, 우리들의 생채기를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세계가 있다면 박탈된 도덕일지언정 기울여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하겠습니다.
온정의 거리에서 원수를 만나면 손목을 붙잡고 목놓아 울겠습니다.
세상은 해를 거듭 포성에 떠들썩하건만 극히 조용한 가운데 우리들 동산에서 서로 융합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종전의 ×가 있는 것은 시세의 역효과일까요.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 코스모스가 홀홀이 떨어지는 날 우주의 마지막은 아닙니다. 단풍의 세계가 있고-이상이견빙지(履霜而堅氷至)- 서리를 밟거든 얼음이 굳어질 것을 각오하라가 아니라, 우리는 서릿발에 끼친 낙엽을 밟으면 선 멀리 봄이 올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