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

2013년 작성

by 정한별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중국에서의 생활은 참으로 복잡했다.
처음 안수길 작가의 '북간도'를 읽고 우린 민족의 지난 사람살이가 여간 고달픈 것이 아니었음을 간접 체험한 후 목놓아 울었다. 왜 우리는 수탈당하며 빼앗기고 침략당하며 살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강한 궁금증이 일어 시작된 방랑. 그렇게 중국 동북부터 발을 딛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에 현재 중국의 동북으로 떠밀려 나갔던 조선족들의 애환을 말할 것도 없었고......
이어, 중국 동북에서 버스를 타고 러시아로 가 연해주 일대를 떠돌며 만났던 까레이스키들과의 만남.
러시아의 식량 증가 정책으로, '농사 잘 짓는 조선민족'들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이리저리 흩뿌려졌었고, 손마디가 부러져 터져라 일을 하며 그곳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당시 정부의 귀국선을 기다리던 한 품은 1세대들은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서 망연하게 서 있곤 하였다. 한때 어느 기업에서 그분들을 모국으로 귀환하실 수 있도록 한 적이 있었는데, 마침 뼈만이라도 고국에 묻고 싶으셨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 귀환의 조건을 맞추기 위하여 70~80세까지 함께 의지했던 부인이나 남편과 '이혼'까지 하며 몸을 모국으로 향했다.
눈물의 대행진.

중국 동북에서의 생활은 참으로 아플 수밖에 없었다. 우리말인 듯 중국 말인 듯 시간이 섞어버린 조선족 동포들의 말씀이 아팠고, 중국으로 유학 온 한국 학생들의 개념에도 아팠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일부 술, 연애, 방탕에 찌든 망나니들의 괘씸한 작태 또한 거슬렸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 중에서 다른 국가 특히 일본에서 유학 온 학생들과 비교하자면 참으로 ‘유학’의 개념과 생각 자체가 판이하게 달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 온 친구 중에는 某 군이 있었는데 이 녀석은 좀처럼 씻지 않고 매끼 식사는 간단한 빠오즈(包子;속이 든 찐빵)와 맥주 한두 캔이 고작이었다. 한국 아이들은 이 아이를 '더러운 아이'라고 놀려댔다. 이 친구와 친해진 후, 나는 때때로 몸서리쳐지게 무서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이 친구의 학구열에 놀랐고, 편집증적인 탐구 열의에 놀랐다. 간도에서, 중국은 물론, 소련과 북조선에 대한 자료들을 섭렵하고 모아가며 나날이 집착하고 있는 이 친구는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또 한 친구는 와세다대학 동양 문화과 학생이었는데, 이 친구 또한 섬뜩한 열의로 제 서 있는 ‘간도’에 집착증을 보이고 있었다. 틈틈이 제 학교로 보고서를 올리곤 하였는데, 필시 내용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일본의 기회’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나 시인 윤동주의 묘역과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하는 사업을 진행한 학자가 이 와세다 대학의 ‘오므라’라는, 某 군의 스승이었으니, 이 얼마나 무서운 미완의 전쟁이란 말인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원한 한 맑은 청년을 생체 실험을 해 죽인 일본이 아니던가? 윤동주 시인은 이 시 단 한편 만으로도 일본을 영원한 죄인으로 만들지 않았나? 죄 없는 사람을 죽인 사람들이 영원한 죄인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죽음-정한별

너 누구냐?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주사를 놓아!
하나부터 열까지 세어봐!

"하나 둘 셋 넷......!"

주사를 놓아!
하나부터 열까지 세어봐!

"하나 둘 셋 넷!"

주사를 놓아!
하나부터 열까지 세어봐!

"하나.. 두울.. 세, 셋, 넷..."

주사를 놓아!
하나부터 열까지 세어봐!

"하나.... 넷... 셋..."

주사를 놓아!
숫자를 세어봐!

“바 다, 물……"
“……”

이곳 간도의 조선어학자들 또한 이구동성으로 이 ‘오므라’라는 사람을 은사 취급하였으니, 이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마침 윤동주를 연구하시던 아버지와 연세대학교의 힘을 빌어 청원을 하여, 연변대학교 권철 교수님과 동행, 윤동주 시인 묘역과 대성중학교(윤동주 시인의 모교: 현 용정 소재), 도시샤대학, 연세대학교에서 윤동주 기념사업회가 직접 일을 관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시비가 세워지고 해마다 연변 조선족 동포 청소년 글짓기 대회도 개최되게 되었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 아버지께 이 무서움과 섬뜩함에 대하여 말하고 들었던 말씀이 기억난다.
“몸의 때는 삼십 분이면 깨끗하게 씻을 수 있지만, 영혼에 새긴 혼과 정신은 영원히 씻기지 않는다!”였다.
某 군의 지저분함과 헤헤거리는 말투는 밤마다 깨끗한 차림새로 노래방에서 밤새 쳐묵쳐묵, 끈적해진 아이들과의 상태와는 애초에 게임이 되지를 않는 것이었다.
서울, 도시의 밤, 이태원 보광동에서는 즐비한 처자들이 다찌(일본 관광객에게 성매매를 하는 직업의 은어)로 집 밖을 나서 자신을 팔고 영혼을 팔고 있었고, 이는 현재에 이르러 ‘돈’이라는 무기로 이들의 영혼과 젊음을 채간 부라퀴들의 전리품이 아닌가? 난 이 끝나지 않은 전쟁에 매우 무서움증을 느끼고 몸서리치며 방황하고 있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방황의 시작과 끝을 찾아 떠돌아다니다가, 우리 상고사에 대한 궁금증이 확대되었고, 결국은 자료가 방대하다는 대학에 힘겹게 들어가 공부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 유학생에게 이러한 분류의 도서를 열람하는 조건이 매우 엄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특히나 상고사에 관련된 것은 더욱 엄한 것을 알게 되었다. 때때로 동북에서 지내며 마음 두었던 ‘북조선’과 ‘꽃제비’에 관한 관심은 다른 경로를 통해 경고를 전해 듣기도 하였다.
특히 동 학교에서 만난 유학생들 중 조기 유학을 온 아이들과 만나 느꼈던 무서움은 더욱 끔찍했다. 중국의 역사 교과서에 명시된 한국의 당시 위치와 신분의 격하를, 이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체 세뇌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아이들의 민족심은 점차 변해가게 마련이었고, 마땅한 듯 모든 것이 이 중화사상(中華思想)에 젖어들고 있었다. 난 스스로 뒤틀어진 심사로 학교에 나가 삐딱하게 앉아, 이를 수용하는 것을 스스로 모욕스럽게 여겨질 정도였다. 초기 학점은 말할 것도 없었고, 글쎄 만리장성에 대하여 쓰라는 시험문제에는 “중국의 두려움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낸 긴 벽, 조그마한 구멍으로 끓는 기름과 화살을 쏘며 상대를 마주 대하는 중국의 속내 및 태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이는 형상물”라고 쓴다던지, 공자에 대하여서는 이렇게 “주유 열국(周遊列國)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는 이상적인 통치자가 없는 중국, 야멸찬 중국 정치가들은 공자를 앗아, 이 학자의 지식 중 백성을 통치하는 수단으로써의 부분만 이용, 발려먹고 모두 공자를 내쫓음, 중국에서는 공자처럼 살다 간 쫓겨남!” 지껄이다가 곤욕을 당하기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학점을 받는 방법은 매우 간단함을 알았다. 만세! 만세! 만세! 와 최고, 최장, 최초, 유구 등등의 미사여구가 붙으면 조금은 수월해진다는 사실을!


중국에 물론 십사억 인구 중에 선량도, 선의도, 좋은 점도 없었겠는가? 이들의 숫자 또한 우리의 인구보다 많다고 여기고는 있는 바이다.

내가 한자를 많이 섞어 쓴다고, 한자? 알은체를 한다? 아니다!
난 당연히 우주 말, 한글을 가장 아끼고 사랑한다, 단지 여전히 그림(상형) 문자인 한자들을 그저 한글의 부속어 또는 도구로 쓰며, 한글이 지닌 오묘한 뜻들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쓰는 것 일 뿐, 나에겐 그것이 장난스러운 즐거움 정도이지 결코 한자를 숭배하거나 그 대대로 위조된 기의(記意)를 흠모하지 않는다. 중국이 거대함을 통치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행했던 행악질을, 권력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하여 벌였던 수많은 살육을, 그 언어 자체 또한 영원한 통치를 위하여, 계급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현재에 들어 누가 모르고 있겠는가? 천자임을, 천손임을 드러낼 땐 왜? 우리가 저들의 속셈이 끝없는 통치의 열망으로, 영원하리라는 착각들로 들끓고 있음을 모른단 말인가?
곧 이렇게 저렇게 유학에서 자라난 지식들이 귀환하여 꿰찬 자리에서 그 자신의 인생 목표, 발로(發露)가 여전히 애국심에 가득 차 있기를 기원한다. 그렇지 않다면 또 우린 기나긴 내부의 전쟁을 치르고 수많은 시간을 거쳐야 그 껍데기 속에 가려진 외국의 유입과 개입에 뒤늦게 땅을 치며 분통하게 될 일이 자명하다. 이는 중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 수학하고 온 다른 학자들에 대한 경계에도 마땅하다고 여긴다.

밤이 깊어 찬 겨울바람 피해 잠자리로 든다.
기회가 생기면 여정을 이어보려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낙타, 노변에 깃들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