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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고 닫고

착각의 패턴 2013

by 정한별

지긋지긋한 패턴 토굴 속 용맹정진 백일 즈음에 아린 마늘, 쑥으로 제향 하던 제 사람 속된 냄새가 불현듯 짓찧어지고 몸과 정신이 홀연 상쾌하더라.


이대로 토굴 밖으로 나아가 한 발을 디딜라 치면 눈앞에 커다란 산 두어 개는 한달음에 날아 달리겠더라.


닳고 닳은 몸뚱이, 지치고 지친 우울한 '나'는 어느덧 사라지고 도덕이 순수하여 속진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이 사라져 버렸더라.


기쁨은 신나고, 먹지 않아도 배부른 포만감이 향기롭게 차올랐으므로 하늘을 날고 있는 기분이었다.


"지난 더럽고 지긋지긋한 나는 사라지고 새 사람이 되었으니 내 순수한 도덕의 계(戒)를 인정받아 세상을 사랑하리라"


백일의 자성 끝에야 비로소 살아갈 마음이 되었던 것이다.


한달음에 존자(尊者), 스승에게 달려가 방문을 벌컥 열고 희색이 만연한 얼골로 선문답을 던진다.


"내가 지금 누구요? “


스승은 돌연 엄한 낯빛으로 서슬이 퍼렇게 일갈을 내려치고 말았다.


"네 이년 그것이 정녕 끝이더냐!"


일순 다리가 후들거리고 태산이 몸을 덮쳐 달달달 떨며 쓰러져 간신히 기어가 방문 문설주를 붙들고 힘겹게 일어섰다.


사자후에 방금 해탈이 쪽박처럼 와르르 깨지고,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며 백일 용맹과 백일 전력(全力)이 일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한참을 울었는데, 그 울음 말미 희미해지더니, 배실실 웃음이 전보다 더 환하게 솟아 나오고 있었다.


과연 존자(尊者) 스승 일갈은 내 그 지긋지긋한 ‘깨달았다 착각’을 일갈에 다시 깨부수어 다시는 환상(幻想) 찬 하루를 살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었다.


백일 품은 오뇌 씻김도 한낱 인간의 어설픈 계획이거늘, 사랑, 천만 번을 곱씹어도 현재를 얻기란 어려워라.


나를 사랑하는 법이란 이렇듯 지나쳐도 지나치지 않은 기도와 회향이 마땅하다.

하물며 자신을 위한 정진도, 기도도 없는 작자가 어찌하여 사랑을 얻을 것이며, 상대방에 대한 기도와 정진이 없이 어찌하여 상대를 사랑한다 하겠는가?


설령 그 기도가 진실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보다 더 처절한 유지(保志)로, 끝까지 할 실천의 근기를 붙잡아야 한다.


이 지극함 유지가 중용中庸일 터!


우리 사랑은 아직 시작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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