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의 다례

2008

by 정한별

골방 속 책 냄새

깨알 같은 글자들 나 좀 맡아주오 아우성 소리

갈갈 솥뚜껑 같은 버럭

소리 질러 숨 죽게 하고

조그맣게 웅크려 잠으로 덮어버린 지금


꿈엔

개미만 한 노인들 홀연히 나타나

끝없는 줄을 서서

맨 앞부터 넋두리를 시작한다


허연 수염 엉긴 입술 달싹이며

"내 생전에 이루지 못한 바라"

못다 한 이승의 미련 떨어뜨리며

맑지도 탁하지도 않은 안개처럼 사라져

줄을 벗어난다


그리고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 생전에 이루지 못한 바"

구슬프고 구슬프게

주억거린 후 다음 할아버지께 차례를 내어준다


끝도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들 앞에 홀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점점 부아가 치밀고 진력이 나

듣는 둥 마는 둥

그저 꾸벅꾸벅 졸린 인사 절만 대강 하며

끝도 없는 도리질만 하고 있었다


줄 끝, 어찌 당도하였는지

골방 안,

내가 잠든 것 같이

조그맣고 동그랗게 등을 말고 모로 누운 쭉정이

작고 작은 노인네가 훌쩍훌쩍 울고 있다


다가가 툭 건드리며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생전에 무얼 그리 못 이루시어

여기 누워 울고 있소, 하였더니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할아버지 얼굴인지

소년이라고 믿는

내 얼굴의 소년 인지도 모를

소년이 흐느끼며 말하기를

나는 단군이야

나는 너인데 아무도 나를 몰라


알 듯도, 모를 듯도 한 외로움을 토하였다

잠결에 그만 엉엉 따라 울고 말았다


눈물 젖은 베갯잇 겸연쩍어 문득 둘러보니

햇살이 서로를 참 몰라보는 빤한 세상을 비추고 있다


골방지기 잡도리를 차리고

웅성대던 깨알 글씨 삼천 개 호주머니에 넣고 일어서자

아문瘂門에 째-앵하니 침을 맞는 통증이 꽂혀온다


밤새 주억거리던 할아버지들

나를 놓고 한 울음이나 울어본 녀석이라야 업힐 것이지

걀걀 거리며 뒷덜미에 자석처럼 철썩철썩 들러붙어 떠들어대고 있었다


마당으로 나가 큰 숨

그 입을 막고

두 팔로 원을 그리자

팔이 긋고 지나간 자리에

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천수千數,

관음觀音의 소리가 줄줄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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