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다음 어떻게 나아갈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_프리드리히 니체 <인간 정신의 발달단계>

by 한세계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서 인간 정신의 발달을 세 단계로 설명했다. 그는 인간이 낙타에서 사자로, 그리고 어린아이로 변한다고 말했다.

이건 동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비유다.


1. 낙타 – “해야 한다”로 사는 삶

낙타는 무거운 짐을 묵묵히 짊어지는 존재를 상징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 부모의 기대, 성공 기준, 안정된 직장, 남들이 정한 길을 따르며 묵묵하게 걸어가는 존재들. 우리는 대부분 이 단계에서 출발한다.

학교를 다니고, 취업을 하고, 성과를 내고, 남들과 비교하며 살아간다. 그게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사회는 이 단계를 통해 돌아간다. 문제는 이런 질문이 떠오를 때 시작된다.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지?”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

그 순간 낙타는 더 이상 편하지 않다.

내가 사회부적응자처럼 느껴지기도 한 단계였다.


2. 사자 – “나는 원한다”라고 말하는 순간

사자는 기존의 기준에 “아니오”라고 말한다. 이건 반항일 수도 있고, 회의일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공허감일 수도 있다.

잘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 공허하다.

성공했는데 기쁘지 않다.

반복되는 일상이 갑자기 낯설다.


“균열”이다.

균열을 만났을때 무너지지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균열이 생기면 우리는 각성한다.

하지만 각성은 곧바로 행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하다.

기존의 의미는 무너졌고, 새로운 길은 아직 없다. 위험한 구간인데, 꼭 필요한 구간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거나, 냉소에 빠지거나, 에너지를 잃는다.



3. 어린아이 – 새로 만드는 사람

니체가 말한 마지막 단계는 어린아이였다. 아이는 놀이하고, 시작하고, 스스로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건 “대단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아니다.
자기 삶의 방식을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자기 삶의 형식을 스스로 만드는 것.

자기 형식이란,내가 선택하고 승인한 삶의 구조다.

내가 했던것들은 먼저 시간에 집중한 것이다.

나는 내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

내가 가장 맑은 시간을 어디에 두는가?

반복되는 하루 속에 내가 선택한 영역이 있는가?

의미를 말하는 건 쉽다. 하지만 시간이 바뀌지 않으면 삶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시간 배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더 자세하게 내가 겪은 과정을 함께 생각해보면.

이런 과정이 반복되는 것 같다.

무감각한 반복 → 균열 → 각성 → 불안한 전이 → 선택 → 형식 만들기 → 유지

만들어진 형식을 유지하다보면 또다시 무감각한 반복에 갖힐수도 있다는 게 어찌보면 허무한 일이기도하다.

이때 중요한 건 “선택”이다.

깊게 머무를 수도 있다.

다시 확장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선택했다는 감각이다.


자유에 대한 생각

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아무 제약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자유는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형식에 갇히는 게 자유를 잃는 것이고, 제약이 있더라도 내가 선택했고 그 제약을 깨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여전히 자유롭다고 느낀다.


지금 당장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원하면 바꿀 수 있다”는 감각은 꼭 필요하다.

그 위에서 깊이도, 안정도, 확장도 의미가 생긴다.


머묾과 확장

나는 무조건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확장이 나를 압도하는 건 오히려 두렵다.

무엇에 깊이 빠져서 성장욕이 충만할때, 큰 그림을 보지못하고 달려나간적이 있지않은가.

그리고 이때 소진되는 것에 무감각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순간에 에너지가 바닥난 걸 알게되기도 하고.어떤 때는 머무는 게 필요하다. 깊이가 필요할 때, 에너지가 한계에 가까울 때.


어떤 때는 균열을 일부러 만들기도 한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시도, 작은 실험.

삶은 직선이 아니라 리듬이라고 생각한다.

안정 → 균열 → 재정비 → 다시 안정

이게 반복된다.


결국 내가 지금 내린 잠정적인 결론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삶의 가치는 “어떤 형식이냐”에 있지 않다.

그 형식을 내가 선택했는지에 있다.

머물든, 확장하든 상관없다.

깊고 만족스러운 형식이라면 충분하다.

단, 언제든 재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남겨둔다.


니체의 낙타, 사자, 어린아이는 어떤 이상적인 인간상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오가는 상태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완성된 어린아이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내가 선택한 형식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내 삶의 시간을 실제로 바꾸는 것이기를 바란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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