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나카를 바른 소녀,
미얀마 바간

사진/바간의 풍경. 석탑과 나무와 풀 그리고 다시 석탑과 나무.

by 모래파파

사람들이 여행을 추억할 때 자신의 여행지에 가장 쉽게 붙일 수 있는 수식어는 '어떤 시기에 거기를 갔느냐'일 거야. '생애 첫 해외여행 중국 길림성, '20대 마지막 나 홀로 여행 터키', '결혼 전 마지막 나 홀로 여행 케냐' 이런 식으로 말이야.(맞아 위 예시는 실제야.)


미얀마는 내가 직장인이 되고 나서 얻은 첫 휴가 때 간 곳이야. 학생이 아닌 일하는 사람으로서 떠나는 첫 여행을 어디로 갈지 물론 고민을 했지. 왜 하필 미얀마였을까. 정확히 이유가 기억나지는 않아. 추억을 되새겨보면 직장인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갔던 해외가 라오스였어. 여행은 아니었고 3주간 단체 봉사활동을 다녀왔지. 동남아는 그때가 처음이었어. 봉사활동이었으니 휴양을 즐긴 건 아니지만 동남아 느낌과 사람은 꽤 좋았던 것 같아. 첫 휴가는 일주일이니에 이동 거리를 생각하면 동남아가 적당하다 여겼고 그렇다고 혼자서 휴양을 보내고자 하는 욕망은 별로 없었고 뭔가 남들이 안 가는 곳을 가고 싶단 마음도 있었던 것 같고. 그런 단상의 조각들이 모여 미얀마로 향했던 것 같아.


때는 2008년 9월. 여행 코스는 양곤-바간-인레호수를 돌아 다시 양곤으로 돌아오는 여정. 미얀마를 여행해보면 알겠지만 저렇게 다녀야 동선 낭비를 줄여. 좀 더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은 제2 도시 만달레이를 넣기도 하지. 물론 가볼 데야 훨씬 더 많지만.

S7301453.JPG 미얀마의 상징과도 같은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로 가는 길. 금빛 사원 가는 길엔 가난이 놓여 있어.

나는 여행 당시 양곤에서 2박 바간에서 1박 인레 호수에서 2박을 했어. 알다시피 미얀마의 대표 도시는 양곤. 허나 미얀마에서 가장 기억 남는 곳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바간을 꼽겠어. 고작 만 하루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사실 머문 기간이 짧아서 지금도 아쉬워. 다시 간다면 며칠이고 천천히 걷고 숨 쉬며 돌아다니고 싶은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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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디넓은 인레호수는 보트를 타고 곳곳에 들러. 왼쪽은 그곳 사람들의 과거 오른쪽은 현재를 보여주는 듯해.

특히 강렬했던 곳은 '올드 바간'이야. 수많은 석탑과 수풀이 뒤섞인 곳. 11세기경 잠시 번성했던 바간 왕조 수도의 모습이라고 해. 정말 석탑이 가로등처럼 길에 널려 있어. 정작 가로등은 별로 없어(12년 전이니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여행을 간단히 정의해 '낯선 곳에 가는 것'이라 한다면 바간은 여행지에 가장 부합한 곳이야. 내가 사는 곳과 닮은 곳이라곤 하나도 없는 곳이었거든.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도 내가 머무는 시간과는 아예 동떨어진 것 같았어.

S7301492.JPG 올드 바간 곳곳에서 만나는 풍경. 곳곳에 솟은 석탑과 나무가 어우러지고 그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살아내고 있어.


바간이 좀 더 특별하게 기억되는 건 그곳에서 만난 한 소녀 때문이야. 그 소녀를 만난 곳은 쉐산도 파고다야. 바간에서 해질 때가 되면 여행자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이지. 넓은 평원 위 숲 뒤로 해가 지는 모습 그리고 붉은빛을 받아 오묘함을 발하는 석탑들을 보기 위해서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마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누군가는 걸어서 이 곳을 찾곤 해.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만큼 기념품을 팔려는 이들도 적잖은데 내가 찾았을 때는 기념품을 들고 달려드는 이들이 모두 아이들이었어. 나이가 많아야 초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지. 애들이 무슨 장사 수완이 있겠어. 그냥 외국인이 한 명씩 올라올 때마다 대여섯 명이 달라붙어서 엽서 꾸러미를 내미는 식이야. 좀 시끄럽고 성가시지.


그 소녀도 그중 한 명이었어. 많은 미얀마인들처럼 얼굴에 천연 선크림 타나카를 곱게 펴 바른 얼굴. 무리에 뒤섞여서 엽서를 사달라고 했고 난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 엽서 하나 사줘도 그만이긴 하지만 하나를 팔아줬다가 다른 아이들이 너도나도 더 거세게 달려들 것 같았거든. 하루 전 양곤에서 그런 경험이 있기도 했고. 내가 엽서를 사지 않고 멀찍이 떨어진 채 돌담 위에 걸터앉아 멍하니 있으니까 그 소녀가 오더라고. '끈질긴 아이인가'라며 경계를 하려는데 "아까 너무 시끄러웠죠?(영어를 썼으니 존댓말은 아니었대도 그냥 내 추억이 되뇌는 대로 쓰자면). 미안해요"라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자기 이름과 사는 곳을 말했어. 파고다 아래에 보이는 작은 석탑인지 움막인지 헷갈리는 곳을 가리키며 저기서 산다고 했어. 석탑이라면 세월을 담은 유적으로 보이는데 저게 집이라는 말을 들으니 '저기서 산다고? 어떻게?'란 생각이 들었어. 소녀는 집이 가난하니 돈을 벌기 위해서 기념품을 판다고, 여기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다고 하더라. 여기서 기념품을 팔려면 관청에 돈을 내야 한다는 말도 했어. 애들이 돈 걱정 없이 학교 다니게는 못할 망정 돈을 받는다니 좀 안타깝더라. 소녀는 "지금 사는 바간이 좋긴 하지만 언젠가는 도시로 나가서 미술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어. 꿈을 얘기하는 소녀 미소와 그가 산다는 움막집이 겹쳤고 내 눈에도 파란색과 회색빛이 섞였던 것 같아. 소녀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자신에게 편지를 써줄 수 있느냐고 했어. 난 알겠다고 했어. 소녀가 적어준 주소는 그냥 '쉐산도 파고다'였어. 쉐산도 파고다에 우체부가 온다면 그 소녀를 찾으라는 뜻이었을 거야.


주소도 없는 집에 살았던 그 소녀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당시 한국에 돌아온 후 나는 손편지를 보냈어. 하지만 답장을 받지는 못했어. 인터넷을 쓰는 곳에 간다면 보내라고 이메일 주소도 알려줬지만 역시 답은 없었지. 사실 편지가 소녀에게 잘 도착했는지도 모르겠어. 주소가 없는 곳이었으니까.


소녀를 추억하면서도 한동안 이름을 까먹고 있었어. 근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때 사진을 찾다가 이름을 다시 알게 됐어. 손편지에 옮겨 쓸 내용을 워드로 작성한 파일이 사진 폴더에 있더라고. 소녀의 이름은 'Cherry'야. 12년이 지났으니 아마 20대 싱그러운 청년이 돼있겠지. 계속 바간에 살려나. 도시에서 일을 하고 있으려나. 10분 남짓한 대화를 나눴을 뿐인 한참 어린 소녀가 종종 기억나는 건 낯선 공간과 시간 속에 만난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그게 다는 아니야. 좀 더 특별히 추억하는 건 처음 본 사람이 잔잔히 털어놓는 꿈에 대해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어.


솔직히 이유는 명확하지 않아. 미얀마를 가게 된 것도 바간이 좋은 것도 이유보다는 결론이 먼저였어. 그냥 가고 싶었고 그냥 좋았어. Cherry도 마찬가지야. 그냥 생각이 나. 나랑 공통분모라고는 하나 없는 사람이지만 어디선가 많이 웃고 있었으면 좋겠어.

S7301591.JPG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Cherry'야. 문득 그런 상상을 해. 이 글을 언젠가 Cherry가 보고 연락을 해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