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스물한 살 서른두 살,
오스트리아

사진/201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비 오는 거리.

by 모래파파

"10분 뒤 출발하는 케이블카가 마지막입니다. 날씨가 안 좋아서 더 이상 케이블카를 운행하지 않습니다."


산 정상을 가득 채운 뿌연 안개. 3m 앞도 잘 안 보이는 최악의 날씨였어.

안개가 그리워서 이 곳에 온 게 아닌데.


2002년 대학교 2학년 때 홀로 한 유럽 배낭여행. 여행 도중 만난 어떤 사람의 추천으로 예정에 없던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St. Gilgen을 찾았어. 지금은 많이 알려진 잘츠카머구트에 속한 곳이야. 나에게 그곳을 추천해준 사람은 St. Gilgen의 Zwolferhorn이란 산에 가보라고 했어.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때는 걸어 내려오라는 조언과 함께. 알프스의 풍경과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을 거라며.


그렇게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곳에서 나를 반긴 것은 그림 같은 풍경이 아닌 안개였어. 정말 아무것도 안 보였어. 설상가상, 안내원이 "날씨가 안 좋아 케이블카 운행을 중단하니 빨리 막차를 타라"라고 하는 거야. 오후 1시 20분쯤 올라갔는데 1시 30분에 내려가는 게 마지막 케이블카라고. 멍하니 서 있는 나한테 안내원은 재촉했어.


"지금 이거 안 타면 내려갈 방법이 없어... 안 갈 거야?"


눈 앞에서 산을 집어삼킨 안개처럼 아쉬움이 가슴속을 가득 채웠어. 내려가는 케이블카 표를 끊기 위해 매표소로 향했지. 무거운 발걸음 속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


1991년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족과 함께 설악산으로 놀러 갔어. 권금성이란 곳에 갔는데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지. 형이 제일 먼저 앞장섰어. 아버지가 뒤를 따랐고. 난 무서웠어. 그래도 밧줄을 잡았어. 가고 싶어서라긴 보단 못 가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글을 읽는 당신이 동생이라면 이해할 그런 마음이야. 발걸음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고 손도 떨렸어. 결국 몇 걸음 못 가 미끄러졌지. 손은 까졌고 무릎에선 피가 나더라. 상처와 바위를 번갈아 바라보는 동안 어느새 아버지와 형은 올라갔다가 내려왔어. 다음 목적지로 가야 될 순간,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어. 분한 마음에 눈물까지 났어. 결국 아버지한테 말했어.


"저 저기 올라갈래요."


난 다시 밧줄을 잡았어. 내 뒤에서 아버지도 말없이 밧줄을 잡으셨지. 그리고 한 걸음씩 떼기 시작했어. 한 걸음 뗄 때마다 눈물도 한 방울씩 났어. 두려움이었을까. 두려움을 이겨낸 성취였을까. 밧줄이 끝나는 지점까지 눈물은 멈추질 않았어.


2002년 Zwolferhorn을 걸어내려 가는 길에 안갯속에서 마주친 이정표. 당시 똑딱이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다시 찍었어.

다시 2002년. 11년 전 기억이 갑자기 안갯속에서 피어올랐어. 그 기억은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어. 매표소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어. 재촉하는 안내원. 머릿속을 가득 채운 11년 전 기억.

결국 표를 사지 않았어. 그리고 안갯속을 걷기 시작했지. 원래 1시간이면 내려갈 거리라고 들었어. 길이 보이지 않으니 한걸음 한걸음이 고행이었어. 비까지 내려서 길은 진흙탕이었지. 미끄러지기도 수차례. 점점 거지꼴이 돼갔어.


왼쪽에 보이는 건 한줄기 태양빛? 아니다. 똑딱이 사진 재촬영이라..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 산길을 홀로 걸은 지 3시간 30분 만에 결국 마을에 도착한 거야. 기뻤어 정말. 목장에서 풀을 뜯고 있는 젖소에게 달려가 소리치기도 했어. 왠지 모를 뿌듯함이 온몸을 감쌌어. 그때 다짐했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은 일은 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언젠가는 오스트리아에 다시 한번 와야지. 꼭 오스트리아만 다니는 여행으로 말이야.

그로부터 정확히 11년 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킨다며 난 다시 오스트리아로 향했어. 여기까지는 개인적으로 의미도 있고 여행담 풀어내기도 좋고 다 좋았어. 그런데...


2013년.

“St.Gilgen? 지금 못 가요.”

“어제 거기에 있는 숙소 주인은 괜찮다고 했어요.”

“글쎄요. 거기는 괜찮을지 몰라도 비 때문에 거기까지 가는 철도랑 길이 다 끊겼어요.”

“…………….”

“뭘 좀 도와줄까요?”

“아....... 그럼 그라츠는요?”

“그라츠는,,”

“부타페스트는 괜찮나요?”

“부타페스트는 아직은 괜찮고, 비엔나에서는 2시간 좀 넘게 걸리고,,”

“아, 자그레브는 얼마나 걸리죠?....... 보시다시피 난 지금 여행자예요. 지금 나에게 어디를 추천하고 싶으세요?

“......................................................................... (얘 왜 이러지,,라고 속으로 그랬을 것 같아)”


질문을 멈출 수가 없었어. 내 뒤로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도 그랬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어. 오스트리아에 도착한 지 벌써 3일째. 이른 아침 비엔나 서역을 다시 찾은 나. 나의 질문에 안내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시간표를 하나씩 뽑아주었어. 내가 물었던 도시로 가는 기차 시간표들. 아마 '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는 마음이었겠지. 어깨 위 커다란 배낭이 흡사 물을 머금어가는 솜 같았어. 결국 느린 걸음으로 안내소를 빠져나왔어. 목이 타는 듯했어. 편의점으로 가 맥주를 샀지. 한국에선 보기 힘든 700mL? 정도 되는 큰 캔이었던 것 같아. 벌컥벌컥 들이켰어. 아침 9시에 먹는 맥주는 속으로 안 가고 어깨 위 솜으로 가는 듯했어.


일주일 남짓한 2013년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문 곳 중 하나는 비엔나 서역이야. 둘째 날도 그랬어. 그래야만 했어.


당초 계획은 나름 그럴듯했어. 11년 전의 약속을 지킨다는 멋스러운 목적이 있었기에 계획도 꽤 낭만적이었어. 일요일 저녁에 비엔나에 도착해 살짝 돌아다닌 뒤 월요일 아침에 잘츠부르크로 출발. 잘츠부르크는 11년 전(2002년)에 못 가본 곳이기도 하고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냥 끌리는 곳이야. 잘츠부르크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매력적인 호수 마을인 할슈타트를 거쳐 오베르트라운이라는 산골 마을에서 하룻밤. 그리고 11년 전 나와 연을 맺었던 St.Gilgen으로 가서 Zwolferhorn산에 다시 오르기. 이번엔 날씨가 좋으면 그 산은 나와 ‘인연’ 이번에도 날씨가 안 좋으면 그 산은 나와 ‘필연’이라고 생각하려고 했어. 못 간다는 상상은 못 한 채.


그런데 둘째 날 아침 잘츠부르크로 가는 기차표를 달라고 하자 안내원은 머리 위 TV를 가리켰어. 화면 속 물난리가 난 곳이 잘츠부르크라고 했어. 그때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어. 우선 오베르트라운 숙소에 전화를 거니, 숙소 밖은 홍수가 났다고 했어. St.Gilgen 숙소에 전화를 걸었어. 괜찮다고 하더라고. 일단 오베르트라운 숙소 예약을 취소했어. 그리고 비엔나에서 하루의 시간을 갖기로 했어. 비는 하루 종일 비엔나를 적셨어. 비 맞으랴, 비 맞은 비엔나 보랴, 비 맞은 비엔나 보면서 내일 어떻게 할지 생각하랴. 쉼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은 뇌마저 축축이 적셨어. 그 와중에 본 벨베데레 궁전은 작은 위로였어. 직접 본 클림트의 ‘키스’, 그 황금빛 영롱함은 꽤나 인상적이었어. 미술 작품에 대해 더 많이 알았다면 더 큰 감동이었을 거야.

벨베데레 궁전 위로 펼쳐진 비구름. 2013년 나에게 비엔나 하늘은 온통 저랬어.


비에 젖은 비엔나를 돌고 맞이한 둘째 날 밤. 온통 고민의 시간이었어. 앞으로 일정을 어떻게 하지에 대한 고민. 헝가리는 물론 크로아티아에 비행기를 타고 넘어갈 생각도 했어. 그런데 어쩜 하나같이 비 예보가 있는 거야. 결국 내린 결론은 일단 St.Gilgen은 가자는 것. 11년 전 추억을 떠올리며 준비한 여행의 의미를 놓기란 쉽지 않았거든. 다른 나라가 날씨라도 좋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니. 또 아침에 St.Gilgen은 괜찮다는 말도 들었으니 희망을 가져봄직했어.


그렇게 다시 찾은 비엔나 서역. St.Gilgen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말은 큰 충격이었지. 안내원으로부터 받아 든 여러 장의 기차 시간표를 보고 또 봤어. 물끄러미 보다가 또 뚫어지게 봤어.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한 곳. 비엔나를 떠난 기차가 하염없이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로 향할 때, 자그레브 전에 도착하는 곳.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였어. 슬로베니아,,, 유고슬라비아? 축구? 동유럽? 소설 속에서도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때부턴 왠지 모르게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어. 날씨 예보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비 예보. 하지만 왠지 아닐 것도 같았어. 결정적 이유, 지금 내가 갈 데가 없잖아.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신기해. 류블랴나행 기차에 몸을 실었어. 장장 6시간 걸리는 여정. 배낭을 내려놨어. 자리에 앉았어. 창밖을 봤어. 여유를 다시 찾은 듯했어. 여전히 빗방울은 창문을 때렸어. 나는 안 맞았어. 묘하게도 마음이 평온해졌어. 슬로베니아, 베로니카가 죽기로 결심한 그곳(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에서). 결국 살기로 맘먹은 그곳.


그때 여행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물건은 우산이야. 8000원짜리 작은 우산. 여행 첫날부터 셋째 날까지 쉬지 않고 폈다 접었다를 반복했어. 그에 반해 우산 가격의 수십 배인 선글라스, 배낭 구석에 처박힌 이 물건은 나올 기회가 없었지. 배낭을 내려놓았을 때, 아래쪽을 만져 무사히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어. 다시 여유를 느낀 류블랴나행 기차에서 마음속에 피어난 단 하나의 소원은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선글라스를 쓰는 것’이었어. 희망은 류블랴나에 도착했을 때 커졌어. 내 생애 첫 류블랴나의 밤, 여행 중 처음으로 비 내리지 않는 밤이었어.

넷째 날 떠난 곳은 ‘피란’이라는 바닷가였어. 류블랴나에서 버스로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이야. 크로아티아가 아드리안 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 나머지 윗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슬로베니아의 바다야. 그 바다에 자리 잡은, 누군가가 ‘게으른 여행자의 도시’라고 부른 곳이 피란이야.

피란의 바다. 바다보다 푸른 하늘이 반가운 시간이었어.

도착해서 울컥했어. 드디어 내 앞에 햇빛이 펼쳐진 거야. 아드리안 해의 푸른 바다보다도, 주황색 지붕을 머리에 얹고 푸른 바닷물과 무릎을 맞댄 아담한 주택들보다도, 자꾸 걷고 싶게 하는 옛 골목길보다도, 내 눈에 햇빛이 들어왔다는 것이 감동이었어. 목덜미를 쏘아대는 따가움이 그토록 반가울 수 없었어. 전체를 돌아보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게으르지 않으면 적응하기 힘든’ 그곳에서 햇빛을 만끽했어. 그러고 보니 이름도 ‘피란’이네. 비에 쫓겨 햇빛을 찾아온 나의 ‘피난’ 처. 선글라스를 쓰고 싶다는 소원은 해가 저물 때까지 이뤄지지 않았어. 아니 실천하지 않았어. 햇빛이 너무 고마워서.


11년 전 추억을 소환해 호기롭게 떠난 여행. 멋들어진 계획과는 다르게 많은 시간을 기차와 기차역에서 보내야 했던 여행. 맘껏 즐긴 시간보다는 기다리고 고민한 시간이 많았던 여행. 소소한 여유와 일상의 햇빛이 고마웠던 여행. ‘더디 가더라도 뒤돌아 가지는 않았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여행은 그렇게 다시 추억이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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