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녀가 공부를 못하는 이유는 뭘까. 많은 학부모들이 가장 궁금한 문제일 것이다. 자녀가 공부를 잘한다면 이유는 딱히 궁금하지 않다. 못한다면 그 이유를 알아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서울대를 다니며 많은 재학생들처럼 나 역시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다. 과외를 처음 시작하는 날이면 보통 학생 부모님을 함께 만난다. 내 경우는 모두 어머니였다. 학생보다 어머니를 따로 먼저 보기도 했다. 어머님들이 털어놓는 ‘내 자녀가 공부를 못하는 이유’는 정말 놀랍도록 비슷하다. 똑같은 말을 계속 들으니 신기할 정도다. 그들이 말했던 이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아들(딸)이 머리는 나쁘지 않은데 공부하는 습관이 안 들어서 공부를 잘 못해요. 선생님이 공부하는 습관만 좀 잡아주시면 금방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은 부모들이 ‘저거 내 얘기인데?’ ‘저 말 진짠데?’라고 할지 모르겠다. 대학교 3학년 때 만난 중3 학생 어머니도 비슷했다. 사전에 들은 정보에 따르면 그 학생은 40명 정도인 반에서 30등을 한다고 했다. 그런 애조차 어머니는 아들이 공부 못하는 이유를 공부하는 습관이 안 들어서라고 설명했다. 미안하지만 기가 찰 노릇이다. 어머니한테 그 말을 듣고 난 대화 상대를 학생으로 바꿨다.
“너는 네가 공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 (얘도 어이가 없다. 이걸 모른다고?)
“모르겠어? 난 알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그럼 생각해보자. 너희 반에서 누가 제일 공부를 많이 해?”
“…… (이 아이는 실제로 꽤 오랫동안 생각을 했다. 고민 끝에 나온 답은) 우리 반 1등인 거 같아요.”
“그럼 너는 너네 반 1등보다 공부를 안 하는데 네가 1등보다 공부를 못하는 게 이상해?”
대화를 듣고 있는 어머님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졌다. 난 다시 어머님한테 시선을 돌렸다.
“어머님, 아드님이 공부를 못하는 이유는 공부를 안 하기 때문이에요. 우리 아들은 머리가 나쁘지 않기 때문에 공부하는 습관만 좀 들이면 성적이 금방 오를 거라는 건, 사실 아들이 아니라 어머님 스스로를 위로하고 계신 거고요. 그렇게 자기 위안만 하시다가 고3이 지나면 남는 게 있을까요?”
이런 비슷한 상담을 대여섯 차례 한 적이 있다. 부모들이 말하는 ‘자녀가 공부 못하는 이유’가 비슷하다 보니 나의 컨설팅도 대략 비슷해지곤 했다. ‘자녀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로하는 착각에 빠져 있지 말라’는 말까지 나올 때쯤이면 부모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전적으로 나를 신뢰하거나 ‘당신이 뭔데 그런 말을 하느냐’는 표정이 된다.
부모에게 듣기 좋은 소리 한다고, 이미 약속한 과외비를 더 주는 것도 아니니(아예 시작도 못하고 잘린 적은 있다) 난 최대한 부모에게 진실을 말해주려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녀를 진정 위한다면 ‘넌 머리가 좋으니 조금만 하면 될 거야’라고 착각하게 해선 안 된다. 부모 스스로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더 심각하다. 차라리 ‘넌 머리가 좋지 않아서 남들이 1시간 할 걸 2시간 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위기감을 갖는 게 낫다.
그리고 당신의 자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반 1등보다 쭉 공부를 덜 해왔다. 지금부터 공부를 무지무지 많이 한다고 해도 그 격차를 따라잡는다는 보장이 없다. 반 1등은 아마 앞으로도 쭉 공부를 많이 할 거다. 갑자기 용하다는 과외 선생 만나고 족집게 학원 다닌다고 성적이 오른다? 그것도 본인이 공부를 해야 통하는 얘기다. 공부하는 습관이 안 들어서 공부를 못한다? 그냥 공부를 안 한다는 말이랑 전혀 다를 게 없다.
이렇게까지 말해도 현실을 부정하는 부모가 있긴 했다. 딱 한 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머님,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제가 머리가 좋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요, 죄송하지만 아드님은 저보다 머리가 나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