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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파파 Oct 13. 2021

80점이 안 되는데
오답노트를 만들라고?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관심사다. 정확하게 말하면 ‘공부를 못하는’ 학생과 그들의 학부모가 매우 궁금해한다. 성적을 높일 수 있는 공부법을 알려주겠다는 책과 유튜브 영상이 넘쳐나고 심지어 공부법만 알려주는 학원까지 있을 정도다.      


공부를 쭉 잘했던 탓에 학창 시절 ‘넌 어떻게 공부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공부를 잘하는 이에게 공부법을 묻는 이유는 명확하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의 방법대로 공부하면 성적이 금방 오르지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공부 잘하는 친구 또는 공부 잘하는 친구 아들딸에게 공부법을 물었을 때 어떤 대답을 들었는가. 그 대답에 만족했는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 비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내 공부법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아니다. 딱히 해줄 말이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공부법을 물어본 친구들은 대부분 나보다 공부를 덜 하는 사람이었다. 앞서 얘기했듯이, 내가 그들보다 공부를 많이 한다면 내 입장에서는 내가 공부를 잘하는 건 당연하다. 내가 ‘너보다 공부를 잘하는 건’ 내가 너보다 공부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도 비슷하게 얘기했다. 공부는 많이 하는 게 중요하다고.      


공부를 안 하면서 방법부터 묻는 건 순서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질문의 밑바탕이 잘못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공부 방법이 잘못돼서 성적이 안 나오는 게 아니라 공부를 안 했기 때문에 성적이 낮은 거다. 공부법을 묻는 친구들에게 내가 항상 했던 말은 “일단 공부를 좀 해”였다. “네가 정말 공부를 많이 하면 나에게 방법을 묻지 않아도 될 거야”라는 말과 함께.      


물론 좀 더 효율적인 공부법이 있을 수는 있다. 공부법을 설파하는 이들이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좋은 공부법’도 ‘공부를 하는’ 이들에게 적용되는 얘기다. 성적이 좋은 친구들을 보면 저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학습 내용을 빈 종이에 쓰면서 공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밑줄을 많이 치면서 하기도 한다. 밑줄도 자를 대고 반듯하게 쳐야 기억이 잘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필로 마구 그어대야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나는 속으로 끊임없이 중얼거리면서 공부하는 스타일이었다. 사실 성인이 된 지금도 비슷하다. 기사를 쓰거나 글을 쓸 때 쉴 새 없이 속으로 중얼거린다. 때문에 어릴 때나 지금이나 공부를 할 때 내 옆에는 늘 물통이 있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계속 속으로 중얼거리는 탓에 목이 계속 말랐다.      


뭐가 더 나은 지는 저마다 다르다. 자기가 해보고 맞는 걸 찾으면 된다. 무서운 사실을 하나 알려주자면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 대부분 자기에게 어떤 방법이 잘 맞는지 아주 어릴 때 깨닫는다. 자기에게 효과적인 기본 학습 방식을 찾아 지속적으로 적용한다. 수영이나 체조처럼 ‘자신에게 맞는 학습법’도 반복을 통해 체화되고 기능도 뛰어나게 된다.      


따라서 공부를 스스로 많이 해보기도 전에 공부를 잘하는 사람의 공부법을 따라 하는 건 별 소용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법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오답노트를 예로 들어보자. 틀린 문제를 따로 떼어내 모아 두고 보는 건 꽤 효과적인 방법이다. 직접적인 성적 향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 내 성적이 100점 만점에 80점 밑이라면 어떨까. 열 문제를 풀면 2개 이상 틀리는 사람에게도 오답노트는 효과적일까. 대답은 ‘NO’다.      

열 개를 풀었는데 두 개 이상 틀린다면 해당 문제들을 따로 정리하는 데만 시간이 꽤 걸린다. 귀찮고 기운 빠지는 일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100점 만점에 80점 미만이라면 교과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본 내용을 아직 다 모르는데 틀린 문제만 정리하는 건 의미가 없다. 틀린 문제를 정리해도 다른 내용에서 또 틀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답노트의 전제 조건은 교과내용을 적어도 95% 이상 이해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30개 문제를 푼다면 한두 개 정도 틀리는 학생에게야 오답노트가 효과적이다. 그 정도라야 오답 정리하는 게 귀찮은 일이 아니고 내가 부족한 1%가 뭔지 파악하기 용이하다.     


오답노트뿐만이 아니다. 많은 공부 비법들은 공부를 잘하는 이들에게 효과를 내도록 맞춰져 있다. 각종 비법들을 사용하려면 공부를 어느 정도 잘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공부를 해야 한다. 많이. 지금까지 안 해왔다면 더 많이. 앞으로도 수차례 할 얘기다. 여기까지 읽고 깨달음이 왔다면 앞으로 올라올 글 읽지 않아도 된다. 지금 당장 공부를 하길 권한다. 자녀에게도 일단 공부를 하라고 말해주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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