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래파파 Oct 17. 2021

그래서 공부를
하루 몇 시간 하라는 거야

앞선 글들에서 반복적으로 하는 얘기는 ‘공부를 잘하려면 많이 해야 한다’이다. 명제가 참이면 반드시 참인 건 대우다. 공부를 많이 하지 않으면 잘하지 못한다는 말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두 번째 글에서 말했듯 이 말에 진심으로 동감한 학생은 더 이상 이 글을 읽지 말고 ‘일단’ 공부를 시작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학부모는 깨달은 바를 자녀에게 주지 시켜야 하고.     


공부는 많이 하는 사람이 잘한다는 걸 인정한다 해도 의문은 생긴다. 큰 궁금증 중 하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이 하라는 건가’ 일 것이다. 이전 글에서처럼 하루 13시간이면 되는 건가. 13시간보다 1시간 더해 14시간 하면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는 건가.     


‘하루 몇 시간’으로 정의되는 공부의 양은 ‘공부를 많이 한다’는 말과 무관하지는 않다. 당연히 상관있다. 하지만 ‘많은 공부’가 꼭 시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적의 공부법은 없다며 많이 하는 게 우선이라 하고선 시간이 다가 아니라니,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아도 잠시만.      


학창 시절 ‘너는 공부를 얼마나 했어?’라는 물음에 내 대답은 늘 같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100점을 받지 못해도 후회 없을 만큼 했어.”     


시험 범위 안에 모든 내용을 숙지했고 이해했다. 문제집도 풀면서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했다. 100점을 맞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했다. 그리고는 시험을 쳤는데 틀렸다면? 그건 내 영역 밖의 일인 거다. 난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기 때문에 억울하지 않다. 문제를 틀렸다는 사실이 슬플 순 있어도 후회는 없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100점을 못 받으면 후회 없을 만큼. 스스로에게 ‘공부 많이 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만큼 해야 한다. 그동안 안 하던 공부를 갑자기 하루 10시간씩 일주일 동안 했다고 엄마 아빠에게 인정받으려 말고 나 자신에게 ‘모든 걸 다 쏟아부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공부는 많이 하는 게 중요하다. 한데 기준을 물리적 시간이 아닌 ‘100점 맞는 게 당연한 경지’로 잡아야 하는 건 ‘몇 시간을 했다는 공부 양’ 자체에 만족을 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말들은 주로 공부를 잘하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성적은 별로인 이들에게 해당한다. 그들이 마음을 굳게 먹고 공부 시간을 늘렸다고 해서 바로 성적 향상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첫 글에서 얘기했듯이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어제까지 나보다 계속 공부를 많이 해왔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내가 ‘확 늘린’ 공부 시간보다, 앞으로도 더 많이 공부를 할 가능성도 크다. 내가 오늘에서야 완전히 이해한 문학 작품을 우리 반 1등은 1년 전에 이해한 후 계속 복습하고 있다.     


공부를 잘하려면 공부 시간을 늘리는 건 기본이지만 바로 성적이 안 나온다고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포기하란 얘기는 아니다. 절대적인 공부 시간을 늘리는 노력은 계속하면서 뭐가 부족한지 찾아야 한다. 부족한 부분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보인다. 그럴수록 교과서 내용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방식마저도 내 것이 돼간다. 뭐가 부족한지 안 보이고 그저 하루 몇 시간 공부한 걸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뜻이다. 


이전 04화 8시간씩 잤다는 수능 만점자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