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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파파 Oct 20. 2021

후회 없을 만큼 노력해야
결과를 인정한다

“그동안 열심히 준비했기에 일본에 와서는 걱정이 없었어요.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 속에 즐겼어요. 끝나서 행복하고 홀가분합니다.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아쉬움이 있지만 나는 어리기에 다시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도쿄올림픽 사격 여자 25m 권총 은메달 김민정)     


지난 도쿄올림픽에서 화제가 됐던 인터뷰 중 하나다. 은메달리스트 김민정은 만 24세다. 그는 1대 1 방식으로 치러지는 연장전 슛오프 끝에 금메달을 놓쳤다. 하지만 밝게 웃었다. 언론에서는 ‘20대의 발랄함’, ‘올림픽을 즐기는 MZ세대’ 등으로 표현했다. 1위를 못하고도 웃으며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단지 그가 요즘 세대이기 때문일까.      


그의 말속에 답이 담겼다. 

열심히 준비했기에 걱정이 없었다. 하던 대로 하면 되니까 즐길 수 있었고 행복했다. 1위를 못했으니 조금 아쉽다. 하지만 나는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다.     


김민정은 자기 자신을 믿고 있다. 믿음의 근거는 준비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기에 결과를 인정할 수 있다. 목표를 위해 모든 걸 바친 자가 할 수 있는 말이다.      


도쿄올림픽에서 남자 높이뛰기에 나선 우상혁은 아예 메달을 못 땄지만 누구보다 크게 웃었다.      


“이제 홀가분합니다. 진짜 후회 없이 뛰었습니다. 진짜 이거는 후회 없는 경기가 맞고요. 진짜. 저는 행복합니다. 진짜.”     


후회 없이 뛰었다. 그래서 행복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이다.     

또 한 명의 은메달리스트 인터뷰를 보자. 20년 전인데 당시에는 매우 화제였다.     


“모든 것을 다 바쳤거든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늘이 저를 은메달밖에 안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58kg 은메달 김인섭)     


김인섭은 올림픽 전까지 해당 체급 세계 최강이었다.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이 마땅하다 여겼을 터. 하지만 1회전에서 갈비뼈를 크게 다쳤다. 고통을 견디며 결승까지 갔지만 결국 패했다. 인터뷰 당시 그는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금메달을 못 땄지만 밝게 웃은 김민정이나 우상혁과는 다르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세대 차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늘이 저를 은메달밖에 안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나는 모든 걸 바쳐서 최선을 다했다. 실력도 노력도 내가 최고였다. 하지만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1등을 못했다는 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인 거다. 너무 슬프지만 난 모든 걸 했기 때문에 받아들인다.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20년 전 인터뷰를 지금도 기억하는 건 당시 고3이었던 내 머릿속에 깊이 박혔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금메달을 못 따면 슬퍼하는 선수들을 향한 비판적 시선이 있었다. ‘1등 지상주의’가 만든 문화라는 식의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저 인터뷰를 보고 본질은 따로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모든 걸 다 바쳤다면’ 난 당당하게 1등을 바랄 수 있다. 내가 쏟은 노력에 대한 당당한 바람이다. 금메달만 박수받아서는 안된다는 말은 사회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논제이다. 허나 개인 각자에겐 최선의 노력을 하고 최고의 결과를 꿈꾸는 것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누가 뭐랄 일은 더더욱 아니란 것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면 기대와는 달리 1등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 결과를 인정해야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다고 당당히 약속할 수 있다. 1등보다 노력을 안 한 사람이 1등을 못한 걸 인정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노력 안 했으니 결과도 안 좋아. 이런 식이면 무엇보다 앞으로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내 노력이 부족했으니 앞으로 달라지겠다’는 통렬한 반성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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