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머리는 따로 있다"
"아무리 그래도 머리가 좋고 나쁜 차이는 분명히 있다"
공부는 많이 하는 사람이 잘한다는 말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많이 듣는 말이다. 공부를 잘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도 ‘일단 머리가 되는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공부머리가 있는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하고, 많이 하니까 잘하게 되고, 잘하니까 힘이 나서 공부를 계속 더 많이 하고 성적도 계속 잘 나오는 선순환이 이어진다는 거다. 일단 뒷부분은 맞는 얘기다.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 성적이 잘 나오니 성취감을 바탕으로 계속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이 계속 잘 나온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는 학생 대다수가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했다. 공부를 못하다가 갑자기 잘하게 된 사람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노력-성과-성취감이 반복되는 선순환 궤도에 올라타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공부머리는? 머리가 나빠도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건가? 공부머리를 ‘타고난 능력’으로 정의한다면 차이가 있는 건 당연하다. 비단 공부뿐이랴. 네 살짜리 아이에게 축구공을 주면 반응 능력이 다르다. 미술을 전혀 배우지 않는 아이들에게 물감과 붓을 처음 줬을 때도 수준차가 확연하다. 어떤 분야든 선천적 능력 차는 있다.
그나마 공부는 타고난 능력 차이가 덜한 분야다. 우리 사회가 대다수가 택할 수 있는 진로로서 ‘공부’를 삼고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선천적 능력의 차이를 노력으로 극복 가능하다고 봤기에 사회 구성원을 키워내는 기초적 과정으로서 ‘공부’를 택하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확실한 건 ‘공부 천재’란 건 없다. 물리 천재, 수학 천재, 언어 천재는 있다. 특정 분야에서 남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재능을 지닐 수는 있다. 하지만 공부라는 광대한 영역에서는 ‘타고난 특출한 재능’을 가진 천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나름의 과정을 거쳐 공부를 잘하게 된 사람’이 있을 뿐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만나기 힘든 사람은 ‘나보다 공부를 많이 하고도 나보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다.
입사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요즘엔 학력도 부모의 빈부에 좌우되고 대물림된다는 말이 있다. 소위 명문대를 나오셨는데 본인도 해당한다고 생각하나.”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 학교 문과 학생들 중에서 공부를 제일 많이 했습니다. 저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는 친구는 보지 못했습니다. 제 머리가 현격하게 나쁜 게 아니라면 제 입장에서는 제가 공부를 제일 많이 했으니 제가 1등을 하는 건 당연했습니다. 저희 학교에서 서울대를 한 명 가야 한다면 제가 가는 것 역시 이상할 게 없었고요. 학력이 부모의 재력에 의해 좌우되는 건 사회 문제일 순 있어도 저에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공부를 제일 많이 한 건 맞지만 전국에서 공부를 제일 많이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객관적 결과가 그렇다. 지금은 서울대 경영학과가 문과 학과 중에서는 최상위에 표시되지만 2000년도에는 법학과가 위였다. 당시에는 서울대에 들어가는 방법이 지원 시기 순으로 수시-특차-정시가 있었다.(어린 친구들 중에는 특차가 뭔지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있더라. 어쩔 수 없는 세대차.) 난 정시로 합격했다. 수시와 특차는 떨어졌다.
난 당시 서울대 법학과를 들어간 친구들이나 서울대를 수시로 먼저 들어간 친구들이 나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불과 수능 문제 한두 개 차이였을 수도 있고 수시 때 봤던 논술에서 미세한 문장력 차이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오랜 기간 각자가 축적한 노력이 결과로 나타났다고 인정한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난 ‘후회 없을 만큼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난 과외를 안 받기는 했지만 과외를 안 받아서 수시에 합격을 못하거나 법학과에 못 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가 공부 수단으로서 과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공부 천재는 없다. 공부를 많이 하면 잘할 수 있다.
여전히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말했듯이 공부를 많이 한다는 게 결코 단순히 ‘공부 시간’을 말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시간일 수도 있지만 정확히 그 시간을 측정하기란 힘들다. 공부 시간을 언제부터 잴 건지 물으면 답이 안 나온다. 확실한 건 하루 몇 시간, 한 주 몇 시간, 한 달 몇 시간 공부했는지가 핵심은 아니라는 거다.
쌓아온 공부의 양이 많을수록 당연히 이해 속도가 빨라지고 탄력이 붙는다. 우리 반 1등이 1시간 만에 하는 걸 난 2시간이 넘도록 낑낑댈 수 있다. 그걸 머리 차이로 돌리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그동안 공부에 쏟은 정성이 부족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심리적으로도 그게 낫다. 공부 성과의 차이를 지능 차이로 치부해버리면 간단하긴 하지만 해결책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 공부를 적게 하고 이전에도 적게 했던 친구가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것 같다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억울하다면….
더해야 한다. 그것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