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의무소방으로 다녀왔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의무소방에는 소위 명문대생들이 넘쳐났다. 소방서에서 함께 일하는 소방관 중에는 자녀의 교육에 대해 묻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중고등 자녀를 위한 공부 방법이나 대학 전공 상담 정도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아예 자녀의 학교 숙제를 대신해달라는 분이 있었다. A4 용지 서너 장 분량의 보고서였다. 잘 쓰되 대학생이 써준 게 너무 티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들었다.
보고서를 대신 써줘야 했던 그 소방관 자녀는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다. 중2 여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교 10등 안에는 늘 든다고 했다. 보고서를 대신 써달라고 딸이 처음 말했을지, 아빠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모른다.
누가 먼저 얘기를 꺼냈든 잘못된 선택이다. 단순히 거짓 보고서를 냈기 때문이 아니다.
보고서를 대신 써주면서도 안타까웠다. 부모가 자녀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생이 써준 보고서로 당장 점수는 더 잘 받을 수 있다. 그래 봤자 중학교다. 점수 몇 점 덜 받고 더 받는 게 대학 진학과는 별 상관이 없다.
아빠는 딸의 ‘탑의 기질’을 없애고 있었다. 아니 이미 제거해버렸는지도 모른다.
탑의 기질. 스스로 탑이 되려는 의지가 있어 최선의 노력을 하며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결과에 대해 성취감이 강한 이들. 쉽게 표현하면 내 공부는 내가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내 공부’를 위해 학원과 과외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보조일 뿐이다. 누가 대신해주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누가 대신해주겠다고 해도 ‘나를 위해’ 거절한다. 대신해주는 게 지속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내 실력에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 소방관의 딸은 탑의 기질이 원래 없었는지, 잃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다. 탑의 기질이 있었다면 보고서 대필 부탁을 했을 리 없다. 아빠가 제안했어도 자기가 거절했어야 한다. 별 것도 아닌 걸 왜 남한테 부탁하냐면서 말이다. 보고서를 써주면서 ‘중학생인 지금 성적은 어느 정도 나올지 모르지만 고등학교 가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공부를 남이 대신하는 건 불가능하고 설령 한두 번 됐을지라도 오래가지 못한다.
탑의 기질은 비단 대학 진학에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삶 전체를 좌우한다. 탑의 기질을 가진 사람은 성적이든 합격이든 자신이 노력한 결과로 인정한다. 성적이 나쁘거나 불합격이어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노력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뭔가에 의존했다면, 온전한 내 노력의 성과가 아니라면 좋은 결과는 찝찝하고 나쁜 결과는 인정 못한다. 자신도 모르게 남 탓을 하게 된다.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내 탓으로 돌리는 기질을 가지면 사는 게 좀 피곤하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십수 년간을 더 살아보니 대학에 들어가는 건 과정이 간단한 편이다. 쉽다는 얘기가 아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주어지니 복잡하지 않다는 거다. 더 넓은 사회로 나와보니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발생하고 얽히는 일들이 참 많다. 그래도 결국엔 좋든 나쁘든 내 탓으로 여긴다. 결과가 안 좋을 때 내 탓을 해야 좋은 결과 역시 내 덕분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내 아들딸의 자신감을 키워주는 건 중요하다. 그 방법은 응당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 여야 한다. ‘네가 열심히 안 해도 엄마 아빠가 어떻게든 해줄게’여서는 곤란하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면 부모는 더 욕심이 난다. 그럴 때 더 조심해야 한다. 커닝이라는 악마는 꼴찌가 아닌 2등에게 더 강렬하게 손짓한다. 당장 욕심난다고 아이를 망쳐서는 안 된다. 부당한 방법을 쓰는 자녀를 방관하는 것도 망치는 것과 같다. 학부모가 자녀를 위해 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탑의 기질을 길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