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박수를 조금 올려주는 영화 <힐빌리의 노래>

by 김철홍

<힐빌리의 노래>에서 가장 영화적인 순간은 JD(가브리엘 바쏘)의 할머니(글렌 클로즈)의 심박수가 급상승해버리는 순간이다. 오랫동안 앓고 있던 지병으로 결국 병상에 눕게 된 할머니는 첫째 린지(헤일리 베넷)와 함께 둘째 JD의 미래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 대화는 ‘JD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누구인지’를 묻는 린지의 질문으로 끝이 난다. 홀로 남은 할머니는 린지의 질문을 머금은 채 회상에 빠진다. 회상은 자신이 며칠 전 JD의 엄마이자 자신의 딸인 베브(에이미 아담스)와 대화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는 대화라기보다는 서로 참아왔던 할 말을 쏟아내는 행위에 가깝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약물 중독 상태에 빠져버린 베브는 JD와의 대화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자 우발적으로 손찌검을 하게 되고, 놀란 JD가 경찰에 이를 신고하게 되며 온가족이 모이게 된다. 온가족이라고 해봤자 할머니, 엄마, 린지, 그리고 별거중인 할아버지뿐이다. JD의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할 베브의 남편은 영화 내에 수시로 바뀌며, 친부의 정체는 영화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사태의 형식적 수습 뒤, 할머니는 베브를 다그친다. 넌 항상 핑계를 댄다고. 늘 남탓만 하며 산다고. 언젠간 반드시 네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날이 올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너 대신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며, 베브에게 너 자신이 낳은 자식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한다. 자기 자신이, 자신이 낳은 베브에게, 그건 자신의 책임이라는 말을 한 회상을 떠올리며 할머니는 깨닫는다. 이건 나의 책임이라는 것을.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 수 없는 이 나쁜 순환. 아니 그토록 반복됐던 것들이라 이제는 안다 어디가 시작인지. 그러나 최근 개봉작인 이승원 감독의 <세 자매>에서도, 또 션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도, 그들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버티고 서 있다. 원인의 제공자들은 자신이 원인의 제공자라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알면서도 끝내 모른 체 한다. 그렇게 가족이라는 이유로 고통이 계승되는 것이다.(아리 애스터 감독의 <유전>이라는 제목의 공포 영화는 ‘유전’이 그 무엇보다 공포라고 말한다.)


할머니에게 영화적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여기서 할머니가 책임지려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는 순간, 시들어가는 할머니의 심박동수가 기적적으로 치솟는다. 이때 할머니의 결단이 정말로 유효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할머니가 자신의 결심을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신’과의 계약 조건에 자신의 희생을 누설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실존 인물의 자전적 에세이로부터 비롯된 이 영화의 결말을 다소 뻔한 해피엔딩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어떤 ‘없는 것’, 그러니까 ‘책임 있는 사람의 말’, 다시 말해 할머니의 침묵은 분명 이 영화를 조금 특별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할머니가 딸과 손주들에게 사죄하는 장면이나 홀로 눈물을 참는 모습 같은 것들이 이 영화엔 없다. 그저 이야기의 화자인 JD의 시선이 있을 뿐이다. JD에겐 한없이 엄격하며 한 마디도 져주지 않던 할머니는 음식 배달을 온 청년에게 구걸하다시피 하며 포도 한 송이와 감자칩을 받는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JD에게 감자칩을 던진다. 한 손엔 타고 있는 담배를 든 채로. 이 모든 것을 본 JD의 마음이 조금 움직인다. 그리고 내 심박수도 조금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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