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빵을 먹고 있는 한 여자를 지켜보고 있던 카메라가 홀연히 여자 뒤에 있던 버스 시간표로 초점을 돌린다. 이 장면이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버스 정거장에서 타임 테이블을 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 갈 때 이미 내가 탈 버스의 시간을 잘 알고 있으므로, 구태여 다른 버스의 출발 시간이 적힌 리스트를 쳐다 볼 이유가 없다. 그저 지금이 몇 시인지 내 시계만 잘 체크하면 될 뿐이다. 그런데 이 카메라는 갑자기 시간표를 본다. 떠날 시간이 가까워오는데, 그녀를 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사랑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기에도 아까운 시간이 1분 1초 1프레임이 흐르고 있는 그 순간 시간표로 눈을 돌리는 카메라. 이 초점 이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실은 터미널에서 버스 시간표를 다시 한 번, 아니 여러 번 살펴보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조금 더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은 잠깐이라도 그 사람을 오래 보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버스 시간표를 본다. 다음 버스가 언제 있는지, 그 버스를 타면 목적지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지, 정말 그래도 괜찮을지를 시간표를 보며 끊임없이 계산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꾸 시간표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장면보다 사랑의 성질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장면은 그러나 영화 외적인 요소와 결합되어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이만희 감독의 유작이며 영화 속 여인과 실제로 사랑하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때 두 사람은 둘만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아니면 마지막인지도 모른 채 이 영화와 같은 작별을 했던 것은 아닐까. 현명한 연인들은 그렇게 수많은 작별의 순간을 겪다 문득 깨닫는다. 아무리 그날의 가장 늦은 버스를 타더라도,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그 마음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온힘을 다하여 서로를 바라본다. <삼포가는 길>의 거의 마지막에 있는 이 아름다운 장면은 그래서 슬프다.
네이버 블로거 금두운(likeacomet) 님의 [#이만희챌린지]를 알게 되어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여러 사람들이 한 달 동안 한 명의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그저 ‘우리’가 즐겁게 복닥복닥 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라는 말이 좋았습니다. 복닥복닥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이런 움직임이 그 어떤 것보다 영화계(?)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꼭 참여해야 해!
*영화는 유튜브 한국고전영화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 제목 치면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