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의 나라에서 발굴하는 사랑

프란시스 리 감독의 <암모나이트>, <신의 나라>를 보고

by 김철홍

일을 하고 싶다. 진짜 본연의 의미로서의 일, 노동을. 프란시스 리 감독의 <암모나이트>를 보고, 그리고 또 전작인 <신의 나라>를 보고 몸과 손을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두 영화의 주인공들이 모두 생계를 위한 노동의 현장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고, 그것이 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게 중요하다. 만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루어졌다는 것이. <신의 나라>에서 시골 농장을 운영하는 한 남자는 자신의 농장에 일을 하러온 또래의 남자와 이루어지고, <암모나이트>에서는 화석을 발굴하는 고생물학자가 발굴 작업 과정에서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말하자면 그들은 사랑을 farming하고, 또 발굴한다.


그런 의미에서 두 영화에 나오는 노동은 생산 활동이면서 동시에 구애의 몸짓이기도 하다. 이 지점이 이 영화들을 판타지로 느끼게 만들고, 부러움을 느끼게 하여 ‘일을 하고 싶다’는 환상적인 생각을 하게 한다. <신의 나라>가 정말로 ‘신’의 나라라면, 그건 다름 아니라 열심히 일을 하면 할수록 일뿐만 아니라, 사랑에까지 가까워진다는 확실한 보상이 주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과 사랑, 사랑과 일을 프란시스 리의 영화 속 인물들은 동시에 얻는다. <신의 나라>의 마지막 장면..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 실질적인 농장의 주인이 된 조니(조쉬 오코너)는 ‘다른나라에서’ 온 노동자인 게오르게(앨릭 세커리아누)와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사랑을 나누던 트레일러를 처분한다. 그것이 그들이 이제부터 제대로 함께 ‘일’을 하기로 결심한 뒤 하는 첫 번째 업무, 이다. 그리고 함께 제대로 된 집으로 들어간다. 문이 닫히고, 이제 그만 봐도 되겠다는 듯 영화도 닫힌다.



Gods.Own.Country.2017.1080p.BluRay.x265-RARBG.mp4_20210314_155151.169.jpg <신의 나라> (God's Own Country, 2017)


<신의 나라>가 닫힌 결말이라면 <암모나이트>는 열린 공간에서, 상당히 공적인 공간에서, 영화(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지켜볼 수 있는 곳에서, 무언가 결정나지 않은 채 끝이 난다. 역시 ‘다른나라에서’ 온 샬럿(시얼샤 로넌)은 노동의 공간이었던 메리의 집을 떠났지만, 여전히 메리(케이트 윈슬렛)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메리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앞으로 ‘생계 걱정 따위 하지 않으며’ 사랑만 하며 살자고 한다. 메리는 (당연히) 이를 거절한다. 메리가 살고 싶은 나라는, 일과 사랑이 결합된 ‘신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메리는 암모나이트만큼 ‘발굴’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샬럿은 몰랐던 것이다.


샬럿의 집에서 나온 메리는 자신의 작품이 보관되어 있는 박물관에 간다. 그곳엔 자신이 발굴했지만, 다른 사람(아마 남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 암모나이트가 있다. 정확히는 그 암모나이트를 보관하고 있는 유리 보관함이 있다. 말하자면 암모나이트의 집이 있다. 메리는 오랫동안 그것을 지켜본다. 반대편에 샬럿이 온다. 서로 마주 본다. 샬럿의 시선, 메리의 시선, 그리고 집을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서 있는 둘을 보여주는 마스터숏에서 영화가 끝이 난다. 그 숏의 지속시간만큼이 <신의 나라>와 <암모나이트>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결말엔 아무 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다. 둘은 다시 손을 잡을 수 있을지, 발굴할 수 있을지. 집에 함께 갈 수 있을지, 그렇다면 그 첫 집은 어디일지, 어떤 집을 트레일러처럼 처분할지 알기 어렵다. 근거가 없다. 그렇지만 여기에 이상한 점은 있다. 마스터숏이 나오기 전까지 카메라는 샬럿을 오른쪽에, 메리를 왼쪽에 있는 것처럼 찍었다. 오버더숄더로 보여줬다. 그런데 마지막 마스터숏에선 카메라의 위치가 180도 바뀐다. 그래서 메리가 오른쪽, 샬럿이 왼쪽에 있다. 이걸로 그들의 미래에 대해 뭔가 가설을 세워볼 수는 있겠지만 이 글에선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



AMMONITE Trailer (2020) Saoirse Ronan, Kate Winslet Movie (1080p).mp4_20210313_230547.943.jpg
AMMONITE Trailer (2020) Saoirse Ronan, Kate Winslet Movie (1080p).mp4_20210313_230619.332.jpg
<암모나이트> (Ammonite, 2020)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것은 노동과 사랑 간의 생산성에 대한 비교다. 그러나 이것도 내가 감히 끝까지 밀고 나갈 수는 없을 것 같다. 비겁함을 인정한다. 굳이 언급 안 했지만 두 영화는 퀴어영화다. 사랑을 어떤 생산 활동이라고 본다면 동성연애와 이성연애의 가장 큰 차이점은 흔히 ‘사랑의 결실’이라고 표현하는 출산이다. 프란시스 리가 첫 (장편) 영화로 남자 동성애, 바로 다음 영화로 여성 동성애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을 어떤 결실 없는 사랑'들'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던 거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 ‘결실 없는 사랑’이라는 표현에 묻어 있는 부정적인 의미를 없애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의 인물들이 확실한 결실이 있는 노동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농장’은 정말 노골적이고, ‘발굴’은 좀 덜하지만 여전히 확실하다. 그래서인지 영화엔 손 클로즈업이 눈에 띄게 많다. <암모나이트>는 예고편만 봐도 많다. 첨부한 사진 두 장 모두 예고편에서 가져온 것. 농장 일도, 발굴하는 일도, 지독하게도 손이 다 한다. <암모나이트>를 보면 감독은 특히 사랑을 나눌 때도 손이 많은 것을 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만약 영화에 I need a hand. 라는 대사가 있었다면 거기엔 literally가 생략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감독의 영화가 정말 좋은 영화였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볼만한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literally.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승리호>를 굳이 반대한다고 비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