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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음악일까 <코코>

by 김철홍

할머니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미구엘의 기타를 부숴버린다. 미구엘은 뮤지션의 꿈을 가진 아이이지만, 문제는 온 가족이 이를 말린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서러운데 우연히 들어간 저승세계에서 만난 죽은 친척들마저 음악을 반대한다. 마음만 먹으면 미구엘을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그들은 환생의 조건으로 ‘앞으로 절대 음악을 하지 말 것’을 걸지만, 그 조건과 함께 이승으로 돌아간 미구엘은 1분도 안돼서 다시 저승으로 돌아오곤 한다. 말하자면 미구엘에게 '음악 없는 이번 생'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이 가족이 뮤직의 ‘뮤’자만 꺼내도 난리를 치는 집안이 된 이유는, 할머니의 할아버지(고조할아버지)가, 음악을 하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떠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홀로 어린 아이를 키운 고조할머니가 떠난 남편에 대한 분노를 음악에 푼 것이다. 그 후 시작한 신발 사업이 번창하여 음악이 없어도 대가족이 사는데 전혀 문제가 없게 되었지만, 미구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성공'은 너무나 큰 저주다.


사실 뮤지션 또는 감독, 배우, 작가 같은 통칭 예술가라 불리는 꿈들은 미구엘 가족의 사연 같은 이유가 없어도 현실에서 자주 반대되는 꿈 중 하나이다. <코코>처럼 어떤 원한이나 특별한 사건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모든 행동에는 원인이 있는 법. 그렇다면 그 부모님들의 예술에 대한 분노는 무엇 대신에 표출되는 것일까. 실은 가족 중에 비슷한 사연이 있어 그들 역시 학습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그냥 내가 못 미더운 것일까. 어느 쪽도 확인할 길이 없다.


확인이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예술가의 꿈을 가진 사람들은 그 꿈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영화에서 가장 애니메이션스럽고, 아이들을 위한 영화인만큼 가장 교훈적인 장면으로 느껴지는 순간은 미구엘이 영화의 모든 여정이 끝날 무렵, 이제 음악을 하지 않겠노라.. 선언하는 장면이다. 약 10세 정도 혹은 더 어린 나이로 보이는 미구엘은, 여러 과정을 거친 후 '가족 사랑'의 위대함을 깨닫고 꿈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가족 같은 거 다 필요 없다!며 오로지 꿈만 좇으려했던 영화 초반부의 선택들은 어린 아이의 철없는 생각으로 치부된다. 이런 식으로 끝날 장르였던 것을 알고 봤으면서도 결말이 아쉬웠던 것은, 미구엘이 아직 너무나 어리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미구엘들의 꿈이 또 한 번 잊혀질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미구엘이 마침내 고조 할머니로부터 제대로 된 축복, '무조건적인 축복'을 받는 장면은 분명 감동적이다. 네가 음악을 하던 신발을 만들던 상관 없으니 그냥 살아다오. 무엇을 하던 너 자체로 사랑할게. 그렇게 미구엘은 가족과의 관계도 회복하게 되고, 일상으로 돌아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도 어느 정도 계속해서 할 수 있게 되지만, 그 음악이 정말로 자신을 위한 음악인지, 혹시 가족을 위한 음악인 것은 아닌지, 헷갈린다. 영화 제목도 '미구엘'이 아닌 가족 중 한 명인 '코코'인 것도, 아름다운 이 영화를 왠지 모르게 씁쓸하게 만든다. 마치 아름답지만 슬픈 기 억 해 줘, 라는 노래처럼. 기억해줘- 기억해주세요-, '제발요'가 생략된 것 같은 이 노래에서 주인공은 왜 기억당할 것을 구걸해야 하는 것일까.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하지만 과연 정말 무조건이었을까. 아니 무조건이 가능하기는 할 것일까. 기억해줘- 했을 때 그건 누구를 위한 것일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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