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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홍 Aug 17. 2021

혐오스런마츠코의 일생


제목으로 영화 판단하면 안 되는데 참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곤 한다. 제목이 별로였는데 좋았던 영화 많이 봤으면서.. 몇 년 전에 영화 팟캐스트 만들었던 것도 본격적으로 영화의 제목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는 컨셉이었다. 영화 제목에 별점을 매긴 다음 마지막으로 멤버 각자가 영화의 제목을 새로 지어보기도 했다. 예능적인 느낌으로 만든 코너였지만 아무리 개드립이었어도 그 제목을 지은 근거는 제시해야 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건 <곡성>. 이 영화가 완전 자극적이고 쎈 것에 비해 제목이 약하다. 너무 순하다. 그래서 <꼭썽>(된소리 세게 발음),, 이런 식이었고.. 이런 식의 방송이었지만 그 팟캐스트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면 최근에 제목이 별로였는데 좋았던 영화 한 편을 봤기 때문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다.


워낙 유명한 영화인지라 여기저기서 영화 얘기하다 보면 추천을 많이 받았었다. 근데 그놈의 제목 때문에, 특히 제목에 있는 '혐오'라는 단어 때문에 손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원제에 있는 嫌われ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미움받는 자'라고 나오는데, 일본에선 그게 '혐오'와 같은 뉘앙스인지, 아니라면 왜 여기에 혐오라는 표현이 쓰인 것인지 궁금하다. 그렇다고 딱히 대체할만한 단어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팟캐스트 계속했다면 뭐라고 새 제목을 지었을까. 미움받는 마츠코의 일생?은 맛이 안 산다. 그래도 미운오리새기 같은 것도 있으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혐마일>보고 왜 이제야 봤지 했다. 마츠코를 일찍 만났더라면 삶에 대한 나의 태도도 조금 더 일찍 바뀌었을 수도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마츠코는 사랑이라고 대답한다. 말로 '사랑', 이라고 답하는 게 아니라 실제 사랑이 제일 중요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움직인다. 계속해서 사랑을 받으려 하고, 그러기 위해서 사랑할 누군가를 찾는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에 못 박혀 있는 것처럼, 마츠코는 일생 내내 사랑받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마츠코가 평생 사랑받지 못하고, 그리고 제목에 '미움받는'이 박혀 있는 것은 꼭 '사랑받지 못함'과 '미움받는'이 동의어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런데 이 둘은 반드시 같은 것이어야만 할까.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미움을 받을 필요까지는 없는데. +, -로 표현해서 사랑받는 것이 플러스이고, 미움받는 것이 마이너스면, 그냥 사랑도 미움도 받지 않는 '제로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 제로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마츠코는 새로운 사랑에 도전하고, 도전에 실패하고, 그래도 또다시 도전해보고, 그런데 또 실패하다가, 결국엔 스스로를 방치하기에 이른다. 혹은 스스로를 버린다. 그렇게 마츠코의 일생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혐마일>이 그래도 감동적인 것은 마츠코의 일생을 이해하고, 그를 이해하는 인물이 한 명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인물은 마츠코의 조카 쇼다. 마츠코의 일생을 쫓던 쇼는 마침내 마츠코의 마지막 순간을 본다. 이 '봄'이 특별한 이유는 쇼가 그 모습을 실제로 본 것, 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쇼는 영화 내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마츠코의 일생을 습득해왔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마츠코의 모습들은 모두 타인에 목격담에 의해 재구성 혹은 재연된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마츠코의 마지막 '씬'만큼은 누군가에게 들은 것이 아닌 쇼 스스로 만들어낸 장면이라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내가 연민을 느낀 누군가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상상해보는 것,은 미움의 반대쪽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츠코가 집을 나서는 순간 하늘의 별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이유는, 다른 누구도 아닌 쇼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마츠코가 마지막으로 봤던 것이, 아니 마지막으로 봤던 거라도 예뻤으면 좋겠다는 소망. 그 하늘을 본 마츠코는 "너무 예뻐."라는 말을 하고, 그 뒷모습을 보는 쇼는 말한다. "나는 마츠코라는 신을 믿어도 좋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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