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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홍 Dec 24. 2021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이 그 정도라고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 대한 찬사를 보고 많이 놀라는 중


그냥 좋다 재밌다 정도가 아니라 역대급이라고

특히 마블 영화 또는 히어로 영화를 뛰어 넘은 그 이상이라고 말하는 평들이 가장 놀라웠다.


그런데 일단 '마블 영화/히어로 영화 그 이상'이라는 게 왜 좋은 영화의 조건인지 모르겠다.

마치 마블/히어로 영화가 애초에 다른 영화들에 비해 아래 등급이라는 것이 가정되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탈 아이돌 급', '탈 아시아 급' 이런 표현 같다는 거다.

듣는 아이돌, 듣는 아시아인 기분 나쁘게.


사실 나도 기분이 나쁘다.

물론 이 기분 나쁨이, 사람들이 마블 영화를 아래 취급해서는 아니다.

그건 그러든 말든이다.

내가 기분 나쁜 것은 애초에 마블 영화를 비마블 영화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점수매김 하는 것 자체다.

내 생각에 마블 영화는 반칙이다.(반칙이 된 지 오래다)

영화 본편에 너무 영화 외부의 것들(특히 다른 영화)이 큰 영향을 끼친다.

비마블영화의 총량을 1이라고 한다면, 마블 영화들은 상황에 따라서 1이라는 숫자를 넘어버리기까지 하는 것 같다.

이번 <노 웨이 홈>이야말로 그것의 극치다.

이전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주로 마블 페이즈 안의 것(아이언맨이나 닥터 스트레인지)을 가져와 1.7의 영화를 만든 것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자신의 유니버스를 넘어 타사(이제 자사겠지만) 유니버스의 것들까지 가져와 2~3 수준의 결과물을 만든 것이다. 


물론 그 결과물이 주는 만족감은 대단하다. 3의 만족감을 그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그 영화에 대해 찬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 역시 꾸준히 마블 시리즈를 재밌게 봐 왔기 때문에 새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항상 큰 기대감을 가진 채 영화관을 찾고, 그러면 마블 영화는 늘 나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준다.


그런데 그뿐이다.

아니 그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블이 나쁘고 구리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마블은 영리한 선택을 했다고 본다. 영화라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가장 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잘 고안해냈다고 생각하고, 리스펙하며, 나 역시 (한 땐 부정했지만 이제는) 이들의 짱팬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블 또한 자신의 영화로 다른 영화들과 어떤 예술적 경쟁(이런게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물론 뇌피셜이지만 그것에 큰 관심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를 만든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왜 우리가 나서서 그들의 영화를 다른 영화들과 동일 선상에 올려놓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정말 정말 기분이 나쁘다,

는 그냥 표현적으로 쓴 거고.. 사실 별 상관 없다.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내 기분에 아무 영향이 없고,

남들 생각에 대해 아쉬움 표하는 것도 잘 안했었지만,

이건 조금 선 넘은 것 같아서 나도 조금 선 넘어 봤다.


실은 그런거 다 떠나서 <노 웨이 홈>이 딱히 재밌지 않았다. 토비 맥과이어 나왔을 때 마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 늙은 한 솔로 나왔을 때처럼 전율이 느껴졌지만, 

이건 위에서 말했듯 영화 바깥의 요소인 것이고. 

결론적으로 예전 스파이더맨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은 나머지 다른 재미 요소들에 에너지가 덜 할애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셋의 콤비 플레이가 딱히 느껴지지 않은게 아쉬웠다.

셋이서 이제부터 협력해서 싸워보자, 고 했으니까.

굳이 굳이 그동안 항상 혼자였어서 우리 팀플레이가 잘 안 되는 것 같아! 라는 대사를 넣었으니까.

잠깐, 여기서 '항상 혼자인 영화들'과 '팀플레이하는 영화=마블'의 대조가 상징적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팀플레이 액션을 뭔가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렇지만 무언가 멋지게 엉킨 거미줄, 그러니까 빌런들에겐 지옥 같겠지만 스파이더맨(과 우리)만은 그곳에서 정교한 규칙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기하학 같은 액션씬이 없었달까. 그것이 많이 아쉬웠다.


인상적인 장면은 오히려 영화의 극 초반 장면이었다.

스파이더맨이 MJ를 데리고 웹스윙을 할 때 MJ가 웹스윙 제발 하지 말아주라고,

이건 아무리 타도 타도 적응이 안 된다고 라고 말할 때.

근데 아무리 거미 인간이라도 그 높은 데서 아래로 떨어질 때 바이킹 탈 때 느껴지는 그 간 떨어지는 기분을 못 느낄까?

그건 진짜 수천 번 수만 번 해도 적응이 안 될 것 같은데 말이지.

말하자면 MJ의 이 '당연한' 비명.

왜 나는 이 당연한 비명이 오히려 익숙하지 않게, 인상적이게, 느껴졌던 것일까.

마블 세계에 이미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이 아닐까.

히어로가 존재하는 세계를 너무 당연시하고 있는 것 아닐까.

차라리 <노 웨이 홈>에 나왔던 것처럼 이 세계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렇지만 이 반칙 같은 시리즈는 점점 더 끈끈하게 자신의 세계를 이룩해가고 있고,

씨네21 한 줄 평에는 "영리하게 끊으면서 더 끈끈한 웹스윙 이어가기"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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