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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랑해> 김준석

by 김철홍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본 영화 #1

<그래도, 사랑해>

감독 : 김준석

25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연극 배우들이 만든 연극 배우에 관한 영화. 김준석 감독 본인이 직접 주인공 준석을 연기한다. 영화는 연극 배우 커플이자 어린 아이의 부모인 준석-소라 부부의 고난을 그린다. 둘의 고민은 연극 무대에 계속 오르고 싶다는 것인데 문제는 둘 중 한 명은 아이 양육을 위해 그 꿈을 잠깐 미뤄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추가로 둘이 지금 들어온 캐스팅이 언제 다시 또 들어올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의 배우라는 설정이 이 사랑극에 긴장감을 형성한다. 둘이 대화할 때 존댓말을 쓸 정도로 서로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대화를 이어갈 것 같다는 믿음을 영화 초반부가 심어줬음에도, 심지어 영화 제목에 떡하니 마치 정해진 엔딩처럼 ‘그래도 - 사랑해’가 적혀 있음에도. 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강도 높은 젠더갈등을 떠올리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이 가족의 고난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사랑이라는 좋은 말로 덮어놓고 대충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는 것임을 쉽게 직감할 수 있다.


<그래도, 사랑해>는 물론 그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남성 감독이 이 문제를 회피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캐스팅 선택권을 온전히 ‘연기 실력’만으로 판단하겠다는 둘의 셀프 오디션도 상징적이다. 둘은 둘 중 연기를 더 잘하는 사람이 무대에 오르는 걸 포기하고 양육을 맡겠다는 조건을 걸고 연기 대결을 펼치지만, 누가 더 나은 연기를 하는가를 판단하는 것 또한 전혀 평등하지 못하며(혹은 누가 판단하는가에 따라서 젠더-프리하지 못하며) 동시에 평등한 경쟁을 하느라 남편이 과거 이미 몇 번의 기회를 누렸다는 사실은 영화 속에서 언급은 되지만 중요한 순간엔 배제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나쁜 남자인가? 나쁜 남자가 만든 이 영화는 나쁜 영화인가?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은 가짜 사랑일까? 둘의 인생을 고작 95분이라는 짧은 시간만 지켜본 것으로 나는 그 답을 쉽게 말할 수 없다. 다만 <그래도, 사랑해>가 보여주는 건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래도, 끝끝내, 지금 자신들 가족의 보금자리를 지켜내는 것이 '우리'라는 것이다. 무엇으로부터? 세상을 쉽게 가르고 분열시키려는 이분법적 논리로부터. 절대로 세상이 적극 장려하는 이분법적 갈등 -- 근래 한국인들이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스펙터클이라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 -- 에 무릎 꿇지 않고 사랑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이 부부에게서 느껴졌다.


이 의지는 어떤 정치인이나 사상가의 그것처럼 굳거나 거친 형태는 아니다. 대신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그들은 끊임없이 대화한다. 숙의한다. 반면 세상은 계속해서 둘을 이간질한다. 영화 중 준석은 준석의 누나의 전화를 받는다. 글쎄, 네 와이프가 저번에 엄마한테 뭐라고 말한지 아니? 이런이런 말까지 했다더라. 그건 정말 아닌 것 같더라. 그건 정말 아닌 것 같아서 참다참다 말하는 거다. 엄마가 그날 이후 잠을 잘 못 잔다. 준석은 소라의 발언을 가지고 홀로 소설을 쓰는 대신 바로 소라에게 말을 전한다. 둘이 그에 대해 짧지 않은 대화를 하고 나면, 이후 그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에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고부 갈등 같은 복잡한 관계가 얽히면서 영화의 재미가 더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아니 관심이 없다기보단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다. 일단 아이를 먹여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이의 엉뚱한 질문에 지치지 않고 친절한 대답을 해줘야 한다. 이들에겐 그게 더 중요한 문제다. 문제 해결이 완벽하진 않을 수 있다. 좋은 부모가 아닐 수도 있고 좋은 남편 좋은 아내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의 문제 해결 방식을 사랑만 할 수 있다면, "그래도-사랑해" 할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문제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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