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영화가 좋았나(2)

2020 베스트 영화 <언컷 젬스>

by 김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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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프디 형제 감독의 <언컷 젬스>는 올해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동안으로 그 기간을 넓혀도 내게 최고의 영화 경험을 선물해준 작품으로 꼽힐 것 같다. 견줄만한 영화로는 2018년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나 <고스트 스토리> 정도가 떠오른다. ‘영화 경험’이라고 쓴 것은, ‘최고 영화’와 ‘최고 영화 경험’을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데 동시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안 될 것 같다’는 것은 누구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인 것일까. 그냥 내 기준 최고의 영화는 최고의 영화 경험을 하게 해준 작품으로 선정하면 안 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가속시킨 영화가 <언컷 젬스>였다.


일단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약간 숨을 쉴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그건 아무래도 애덤 샌들러가 연기한 보석상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마치 움직임을 멈추면 곧 숨이 멈출지도 모른다는 듯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시속 몇 마일 이하로 속도가 떨어지면 터지는 폭탄을 달고 있는 것처럼<스피드>(1994). 영화의 초반부터 건달에게 얼굴을 가격당하는(심지어 자신의 가게에서)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는 이 보석상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또 다른 리스크를 감내하고, 그 리스크를 무마하기 위해 또 다른 리스크를 만들어낸다. 지금 당장을 버텨내기 위해선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바로 그게 이 영화가 재밌는 이유다. 온 영화가 그에게 시련을 주는데 계속해서 버텨내는 인물을 보는 것. 온 세상이 나에게 이정도로 덤벼든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도박밖에는 없을 것 같다. 솔직히 상황을 정말 냉철하게 본다면 오히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나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나는 이 보석상이 계속해서 움직였으면, 여기서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세상에 맞서 싸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건 그냥 이 보석상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재밌었기 때문이다! 진짜 이 영화는 다른 거 다 떠나서 재미 하나로도 최고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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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언컷 젬스>는 내게 특별한 선물을 주기도 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 글에선 ‘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지만, 실은 이 영화가 재미와 별개로 가장 ‘영화적’으로 느껴졌던 순간은, 흑인 농구 선수가 제련되지 않은 블랙 오팔에 푹 빠짐과 동시에 샵의 진열장이 와장창 깨지며 내려앉는 순간이다.(글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농구 선수처럼 [언컷 젬스]에 빠져들고 있던 나는 대체 내가 본 게 뭔가 싶어서 이 장면을 서너 번 돌려봤던 걸로 기억한다(넷플릭스의_장점). 여기서 내가 느낀 건, 이 순간에 뭔가 화학적인 작용이 일어난 것 같다는 것이었다. 화학은 잘 모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 같은 느낌. 그렇다면 내가 느낀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에 대해 생각해보며 글을 썼었다.


그 결론은 [문이 묻는다] 글에서 썼듯 현실과 영화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만날 수 없는 ‘픽션의 인물과 실화의 인물’이 마침내 만났던 것처럼, 현실(과거)의 NBA 선수 케빈 가넷과 영화(현재) 속 케빈 가넷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여기에 이 블랙 오팔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라는 게 내 가설이었다. 나는 이렇게 영화를 보고 어떤 가설을 세우는 것을 좋아한다. 내 머릿속엔 매 영화마다 자신의 영화 세계를 관장하는 어떤 신 같은 존재가 있다. 신은 자신이 만든 세계에 한 인물을 넣는다. 그에게 초능력을 주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뤄보게 하기도 하고, 아니면 시련을 주어 무언가를 깨닫게 만들거나 좌절시키기도 한다. <원스...할리우드>에서는 안타깝게 죽어버린 젊은 배우를 살리기 위해 ‘브래드 피트’ 요원을 투입한 신이 보이고, <염력>에서는 억울한 사람들의 한을 풀기 위해 자신의 힘도 제대로 컨트롤할 줄도 모르는 한 남자에게 능력을 준 신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아워바디>에서는 바디를 줬지만 대신 다른 모든 것들을 빼앗아가려는 무서운 신을 보았다. 말하자면 나는 가설을 세울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가설이 세워진다는 것은 여기에 뚜렷한 욕망을 가진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언컷 젬스>는 정말 최고의 영화였다.


<언컷 젬스>의 엔딩은 그 욕망의 결정체이다. 이 장면이 정말 욕망적인 것은 여기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서인데, 그건 카메라가 보석상의 얼굴에 생긴 총구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비슷한 엔딩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봤다. 그 엔딩에서 화가의 시점으로 시작한 카메라는 갑자기 모든 물리적 법칙을 무시하고 줌인하여 말도 안 되는 위치에서 그녀를 쳐다본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에서 카메라 감독은 영화를 멈추지 않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카메라를 닦아버린다. 단언컨대 이 영화만큼 영화의 법칙을 어긴 영화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뭔가를 이루려는 영화들이 나는 좋다. 나는 그 마음만 느껴진다면 영화가 그 어떤 물리적 법칙을 무시해도 좋고, 어떤 개연성도 파괴해도 좋다. 자연스럽지 않아도 좋고, 작위적이어도 좋고 내로남불이어도 좋다. 그냥 솔직하게. 어느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솔직히 자신의 욕망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그 욕망이 어떤 것이든 설득당할 의향이 있다. 지금까지 <언컷 젬스>에 너무 설득당해버린 한 사람의 변명이었다.


* 외국영화 5편 선정 이유에 대해 쓰려고 시작했던 글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나머지 영화들은 다음 글에 계속.

2020 외국영화 TOP5 <언컷 젬스> <페인 앤 글로리> <1917> <작가 미상> <환상의 마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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