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이 너무 좋다. 수영장 가는 날인 월수금을 기다리다 보면 한 주가 금방 간다. 며칠 전에 현지한테 수영이 유일한 활력소라고 했다가 한소리 들었다. 유일한까지는 진짜 아니고 그냥 그만큼 좋으시다는 거였다. 수영 못하게 되면 한동안 우울하거나 짜증나긴 할 테지만 금방 또 다른 걸 찾을 거다. 그럴 수 있다는 게 좋다. 그럴 수 있다는 게 수영보다 더 좋다. 리디아는 다른 걸 찾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인물이다. 리디아는 원래 수영 선수를 꿈꿨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수영을 계속하지 못한다. 리디아는 원래 아버지를 피해 물로 도망친 것인데, 그가 다시 리디아의 수영을 빼앗은 것이다. 유일한 활력소를 잃은 리디아의 연대기는 지켜보는 게 고통스럽다.
<물의 연대기>는 연대기다. 리디아의 이야기가 연대순으로 서술된다. 그러나 완전히 순서대로 진행되는지는 알 수 없다. 그건 이 리디아가 기억을 기억하는 방식이 아니다. 이야기는 표면적으론 주인공이 저서 ‘물의 연대기’를 쓴 작가가 된다는 서사로 진행된다. 그러나 작가가 된다는 게 진짜로 중요할까. 작가가 되었다는 게 연대기의 엔딩이 될 수 있을까.
영화에서 리디아는 뭐든 만들어내는 거, 뭐든 해내는 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리디아는 마침내 수영을 되찾는다. 하지만 리디아는 이제 예전만큼 물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리다아에겐 다른 것이 있다. 리디아는 이제 다른 것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수영하는 리디아를 보며 <세계의 주인>에서 태권도하는 주인이가 떠올랐다. 인간에게 운동이 정말로 큰 도움이다. 운동은 어떤 목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운동할 때 우리는 분명 특정한 행동을 do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번듯한 엔딩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안 해도 될 때, 우리는 세계의 주인이 된다. 리디아는 <물의 연대기>의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