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10분

- 하지만 궁금해요.

by hanxs

그날도 시작은 주차문제였다. 목동은 다 좋은데 일방통행과 주차가 문제다라는 인식이 내게 있다. 프로그래머로 일할 때 목동에 있는 회사에서 5년 정도를 파견해서 일하면서 묘목처럼 심었던 나무가 성인 키보다 크는 것을 목격했다. 영화 세트장에 단역들 다니듯 어색했던 거리를 기억한다. 내 생의 30대 중반을 보냈던 동네라서 애착이 간다. 공원도 많고 편의시설도 많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서울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주차공간이 아쉽다.


목동에서 미팅이 있어서 갔는데 건물 내 주차장이 만차여서 옆에 있는 건물에 지상주차를 했다. 오전 미팅을 마치고 12시 조금 넘어 점심까지 해결하고 차를 빼려고 주차장에 왔더니 내 차 뒤에 흰색 아반떼가 주차해 있다.

"10분, 아니 15분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 교육 중이라서..."

"네"

처음부터 테트리스처럼 앞차 뒤차가 들어오게 되어 있는 주차장이라 예상했던 상황이다.

카페에 가기에 부족한 시간이라 그냥 주변에서 서성거리기로 했다. 차 트렁크에서 주섬주섬 찾아보니 지난주 토요일판 신문이 있다. 광풍을 일으켰던 스타벅스 섬머레이디 백을 목표했다가 어쩔 수 없이 'get'한 섬머 체어(접이식 의자)도 있지만 좀 과하다 싶어서, 그냥 정치인 얼굴이 일면에 나온 신문을 들고 주차장 맞은편 이면도로 연석에 깔고 앉았다.


건물 지상주차장이 바로 보이면서도 사람과 차가 별로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다. 신문지를 깔고 앉은 연석에 온기는 구들장처럼 은근히 따듯하다. 오전에 오락가락한 비에도 열기는 식지 않았다. 8월 중순은 비가 오거나 해가 쨍하거나 상관없이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소나기가 그친 자리엔 매미소리만 가득한 한가로운 도심의 오후였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10분은 넘은 듯한데 잘 모르겠다. 10분만이라도 '멍' 때리고 싶었다. 누구의 방해도 아닌 스스로 방해했다. 조금 전 미팅에서 받은 명함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명함 앱에 등록했다. 일 분도 안 되는 시간, 왼손에는 명함 세장이 오른손에는 핸드폰이 있고 시선은 이면도로 건너편에 물끄러미 앉았다. 무념무상의 상태처럼 보였지만 머릿속에는 온갖 것이 혼돈스러웠다. 손에 들고 있는 명함이 방아쇠가 돼서 멍 때리는 뇌에서 미세하지만 '관심'을 끄집어내더니 머리를 타고 왼쪽 어깨를 지나 승모, 팔뚝, 손등, 손가락으로 퍼지는 게 느껴졌다. 명함 모서리를 구기고 있는 왼손에 아까운 시간과 관심이 갔다. 흩어진 마음을 복귀시키려고 '쓸데없는 관심'을 명함과 함께 주머니에 담았다. 시야에 아른거리는 핸드폰도 옆 연석 위에 두었다. 최소한의 고립으로 마음을 자유를 얻었다.


옹색하게 얻어낸 8분여 동안 얻어낸 전리품은 소소하다. 주황색 젤리슈즈 신은 엄마와 반바지에 야구모자를 쓴 아들이 손잡고 걷는 모습을 보면서 8년 후 아내와 아들을 그렸고 털이 덥수룩한 종아리를 드러낸 감색 반자니에 하얀색 티를 입고 백팩에 장우산을 들고 가는 청년을 보았다. 손잡고 걷는 엄마와 아들은 언제 봐도 든든하다. 하물며 6살 아들과 엄마도 그렇다.


수업 중이라고 10분 혹은 15분 이면 점심시간이라고 속사였던 분이 어느새 나와서 차를 뺀 상태를 안건 나름의 여유를 즐기던 중 언제 나오나 궁금함의 시선으로 건너편 차을 봤는데 내 차 뒤에 흰색 차가 빠지고 다른 녹색차가 들어오려고 하는 순간이다. 서둘러 달려갔다. 빈 곳으로 들어오려던 운전자와 눈빛으로 이제 나갈 거라고 알렸다. 궁금했다. 왜 흰색 차주인은 차를 뺀다고 말하지 않은 걸까? 분명 내가 기다린다고 했는데 만약에 내가 이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으면 또 녹색 차주에게 전화를 하게 될 텐데...

생각의 꼬리는 길게 늘어졌다. 도마뱀 꼬리처럼 자르고 오려니 '신경'이 많이 쓰였다. 진짜 궁금했다. 이 곳 상황을 흘깃 보고 있는 흰색 차주를 불러 물을 수는 없어서 자문자답으로 결론지었다.


세상이 험하니까 혹시 모르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 조용히 차를 옮겼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지만,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이 정도로 해야 마음에 위안이 된다. 그 사람이나 나나 서로 마음에 상처 받지 않는 Win-Win으로 마무리한다.


어쨌거나 그녀 덕에 한가로운 오후의 10분을 선물 받았다.



#hanxs

#한가로운 오후

#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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