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를 다시 만났다. 처음엔 조금 당황스러웠다. 20년 전의 나를 보니 모든 게 어설펐다. 면접장에서 입사하고 싶은 회사에서 추진하는 핵심 프로젝트에 대한 물음에 땀만 맺히고 목소리는 돌고래에게 고주파로 전달하는 수준으로 삐걱거리는 소리만 났다. 결정적으로 자기소개를 하라는데 긴장해서 서당에 갓 입교해서 천자문 외우는 학생처럼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발이 오글오글 한다.
전시회를 하고 나면 명함이 쌓인다. 쌓인 명함에서 모래 속에서 금을 걸러내 듯이 하나하나 분류한다. 명함철에 바로 가거나 앱에 등록되고 주소록에까지 등록되는 사람 구분이 된다. 내 명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보니 누군가 나를 명함 앱에 등록했다는 알람이 와 있었다. 누가 나를 등록했는지 확인하던 중 명함 앱에 내 프로필이 최신 정보가 아닌 걸 보고 업데이트를 했다. 학력, 경력 써가다가 마지막 항목에서 멈칫했다. 자기소개란 이다. 자기소개라니 뭐라고 나를 소개하라고?
다시 20년 전 면접장으로 내가 소환된 느낌이다. 평소에는 당연히 입어볼 일이 없던 짙은 감색 양복에 하얀색 셔츠와 블루 계열의 타이, 갈색 옥스퍼드 구두를 착장하고 마른침을 넘기며 철제의자에 앉아있다. 옆에는 경쟁자이자 동료가 될지 모르는 세 명이 지금의 사회적 거리만큼 떨어져 배치되어 있다. 3미터 전방에는 하얀색 테이블보를 덮어서 구두 색조차 알아볼 수 없지만 각자 자리 앞에 심사위언의 명패를 놓여 있는 네 명이 앉아있다. 첫 번째 질문이다. 네 명중 누군지 모르는, 마치 면접장 위쪽 천정 어디선가 나오는 소리처럼 아득한 소리로 왼쪽에 있는 분부터 자기소개를 해 보세요? 아! 나는 하필 왼쪽 첫 번째에 앉았다. 떠듬떠듬 '자기소개'를 했다.
그 이후에도 공식이나 비공식적인 형태로 '자기소개'를 수 없이 했다. 단순하게 계산해 보면, 공식은 면접이나 회사 관련 미팅 같은 '밥벌이'에서 이고 비공식은 여행 중에 만나는 낯선 이방인부터 결혼 적령기의 남녀로 만남에 이르기까지 '삶벌이' 자리에서다. 다시 스스로 '자기소개'를 하려고 하니 화면 빈칸에 깜빡거리는 커서를 밀어내며 써 내려갈 나의 소개가 무엇일까 고민이 되었다. 일을 시작하고 10년, 또 한 번의 10년을 넘겼는데 나는 뭐라고 소개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뭐라고 소개되고 싶은가 여기서 물음이 생기니 늪에 빠진 하마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한 발자국도.
결국 보여야 하는 내 모습을 소개로 타협했다. 명함 앱의 속성에 맞춰서 비즈니스를 영위하기 위한 '나'로 포장했다. VR / AR 전문가, 교육 콘텐츠 개발자, 컨설팅 등 4차 산업 관련 내용으로 채웠다. 필요해서 입는 짙은 감색 슈트에 옥스퍼드 구두처럼 보이고 싶은 월화수목금요일의 '디지털 시대의 4차 산업 전문가' 이미지를 그려 넣었다. 정작 나의 실체는 면바지와 셔츠에 운동화를 신는 토요일의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 한량'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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