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이 많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종종 나오는 똥고집이 있다. 그 대상은 사람이 아리나 바로 컴퓨터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오랜만에 지금 똥고집을 부리고 있다. 분명히 전에 잘 되던 기능이 어느 순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오후부터 저녁 내내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다. 왜 그러느냐고, 뭐가 문제냐고 아무리 물어보고 협박해 보아도 대답이 없다. 그냥 묵묵부답이다.
"아!, 이 컴퓨터 정말 이상하다."
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때의 신기함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비주얼 베이직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중학교 때 처음으로 접했다. 영어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운다는 사실은 악세레이터와 기어의 역할을 겨우 알만한 운전 교습자에게 시내주행을 한 번 '조심스럽고 천전이' 해보라는 말과 같았다. 컴퓨터와의 첫인상은 재미있고 정직한 친구 같았다. 베이직 언어를 배우는 내내 할 수 있는 건 선생님이 칠판에 쓴 프로그래밍 코드를 어눌한 타자실력으로 입력하는 길 뿐이었다. 프로그래밍 언어의 가장 기초인 'Hello World'를 치는데 몇 칠이 걸렸다. 더 중요한 건 의미를 전혀 모르고 영어로 타자연습을 한 수준이 바로 나의 첫 번째 컴퓨터와의 대화다.
이후로 진짜 밥벌이 수단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울 때 다시 한번 컴퓨터의 정직성을 실감했다. 컴퓨터는 내가 입력한 그대로 결과를 내보내 준다. 'Garbige in garbige out'이라는 진실의 순간을 맞닥드릴 때이다. 사람이 넣는 코드의 품질을 논하지 않고 입력한 수준에 맞게 결과를 내 보내준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를 내보낸다는 당연하지만 가끔 잊고 있는 삶의 명언이다. 사람들은 종종 쓰레기 넣고 황금을 바라고 있을 때가 부지불식간에 있기도 하니까.
정직한 친구에게 내가 제대로 잘 입력하면 그에 걸맞은 정직한 결과를 준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매달리기에 괜찮은 대상 중 하나다. 보통의 삶에서 인과관계가 명확한 대상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변수가 많고 때로는 인과의 고리를 찾는 일도 어렵다. 그에 비하면 이 친구는 쉽고 투명하고 엄정하다. 가령 1만 줄의 코드 속에서 점(dot) 하나를 잘 못 치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는 얼마든지 용서하고 넘어갈 실수지만 프로그램은 에러를 뱉어낸다. 그리고 단 하나의 결과도 내놓지 않는다. 엄격하다고? 아니 심플하다. 왜냐하면 결국 그 잘못을 찾아서 고치면 '바른 결과'를 내 보내 줄테니까.
종종 내 컴퓨터가 이상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다. 그 말을 해석해 보면 '내가 컴퓨터에 잘 못된 값을 넣었다'라는 말이다.
실수하는 게 사람의 속성이라면 허용하지 않는 건 컴퓨터의 속성이다. 문뜩 인공지능이 발전한 10년 후 내 컴퓨터가 내 실수를 감싸주면서 위로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hanxs #컴퓨터 #인공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