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이나 걸릴 줄 몰랐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의 늠름하고 반듯한 모습은 시절을 앞서가는 최신의 표상처럼 보였다. 주변에 친구들과 차원이 다른 자태를 뽐냈다. 로봇이나 탱크도 멋졌지만 그의 아우라를 범접할 수 없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최고 중에 최고였다.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서도 대화가 가능한 건 그 시절에 오직 '무전기'뿐이었다. 만화 속에서나 가능했던 신기한 일이 가능한 장난감 중에 장난감이었는데 금액이 거금 1만 2천 원이라 감히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루 용돈이 백 원 남짓이었을 때니까.
이제 그 로망을 실현했다. 보상 소비의 차원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건 아니다. 보상 소비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소소하기도 했고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품목이었다. 여기저기 의식의 흐름 따라서 웹서핑 중에 운명처럼 눈에 띄어서 바로 구매했다. 두 번 놀랬다. 가격과 성능이다. 어릴 때 기억하는 가격과 별 차이가 없었다. 1만 4천 원이다. 아무리 중국산이라지만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혹시 한쌍이 아니고 한 개 아닌가 하고 구매 옵션을 자세히 봤다. 다행히 두 개에 그 가격이었다. 다음으로 커피 3잔 값의 전자기기의 성능이 기술의 집약체로 손색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1킬로 미터 범위 내에서 통신이 가능했고 단일 주파수가 아니라 여러 주파수 중 선택도 가능하다. 소리 조절이나 이어폰을 이용할 수 있는 건 기본 기능이다. 1만 원 대의 장난감에서 기대하기 힘든 기능들이다.
일주일 만에 도착한 제품을 보는 순간 나는 40년 전 소년으로 돌아갔다. 처음 쥐어 본 '내 무전기'는 아담한 사이즈로 손에 폭삭 담겼다. 어린 시절 친구의 무전기는 주먹을 이기는 보자기처럼 쫙 펼쳐야 잡을 수 있는 큰 녀석이었다. 마음은 소년이지만 몸은 장년이 된 지금, 무전기는 작고 손은 크다. 제품 설명에서와 같은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무전기를 들고 야심한 밤 아파트 놀이터로 향했다.
"여기는 놀이터다. 잘 들리나? 오버"
"잘 들린다 오버"
40년 전 소년과 지금 나이 든 소년의 대화다.
그동안 수많은 놀잇감들이 내 손을 거쳐 가는 중에도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처럼 '무전기' 한 번 사봤으면 하던 아쉬움을 이제야 실현했다.
늙은 남자는 없다. 다만 나이 든 (철없는) 소년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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