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술이 마술이

by hanxs

술이 술이 마술이


대학교 1학년 입학 후 공식 음주가 시작됐지만 비공식은 대입시험 100전에 마신 백일주를 마신 고3 시절이다. 새내기 때 마신 주종(주종)은 용돈과 교재값을 타서 음주가무에 골고루 안배해야 했기 때문에 저렴한 막걸리가 많았고 소주와 맥주도 비율은 적어만 함께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는 내 돈 내고 내가 먹던 시절에는 막걸리와 소주는 선택지에 빠졌다. 아무래도 다음 날에 대한 대비가 학교 시절보다는 엄하기에 숙취가 상대적으로 덜한 맥주를 주로 마셨다. 막걸리와 소주가 빠진 자리엔 와인이나 드물게는 양주가 대신했다. 직장생활이 10년, 20년이 넘어가면서 회사를 창업하고 금주를 선언한 건 아니지만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이전에도 술을 즐겨하는 편은 아니었고, 몸에 무리되는 건 칼같이 안 하는 편이라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다. 대학 절친 P의 독설에 의하면 나로 말하자면 ‘지 몸 하나는 끔찍하게 챙기는 놈이라 벽에 X 칠할 때까지 살 녀석’이었다. 술도 그렇게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 생각하니 미련 없이 벗어버릴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술자리를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직장생활 초반에는 잘 못 마시고 좋아하지 않는 술자리를 긴급출동 견인차에 끌려가는 승용차처럼 급하게 끌려다녔다. 술자리에 가서는 말없이 홀짝홀짝 마시고 분위기와 겉돌기 일수였다. 본편은 다음날이다. 회사에 가면 화장실에서 일을 보느라 체력이 방전돼서 정작 회사 일 할 힘이 없었다. 장이 약해서 안 그래도 과민성 대장 증상인데… 오죽하면 회식이 예정되면 다음날은 월차를 미리 내기도 했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요즘도 필요한 술자리는 필참 하는 편이다.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괜찮지만 초면이거나 술자리가 처음인 사람에게는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전 술 안 마십니다라고 하는 일도 겸연쩍어서 나름의 방책은 ‘전 양주만 마십니다’라고 가벼운 농담으로 넘긴다. 보통의 술자리는 맥주 혹은 소주이니 그 정도 이야기하면 눈치 있는 상대는 알아챈다. 그래도 술을 권하면 그때는 저는 술을 못 마십니다라고 단정적으로 대꾸한다. 어색한 찰나에 시간이 흐르지만 그때부터는 자연스럽게 ‘사이다’를 소주처럼 혹은 ‘사이다 + 콜라’의 비율을 이용한 수제(?) 맥주로 잔을 부딫치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술자리의 목적은 관계의 윤활유 역할이지 정신이 혼미하도록 마신 후의 객기 체험에 있지 않으니까.


술은 기호식품이다. 커피에 카페인 때문에 마시면 잠이 안 와서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 커피를 권하지 않듯 술을 마시면 숙취가 오래가고 배가 아파서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 강권하는 일은 바른 대응이 아니다. 또 술 마시지 않는 사람, 특히 남자에 대한 선입견도 이제는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교회 다니지 않아도 술 마시지 않고 술 안 마신다는 것인 가정적인 남자의 증표 또한 아니다. 초콜릿 먹지 않는다고 가정적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다. 내가 좋다고 남도 당연히 좋아해야 하는 것은 없다. 술은 커피고 아이스크림이고 초콜릿이다. 그저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식품이다. 다만 많이 먹을 때 보통은 '소화불량'이 되지만 술은 '대화불량'이 되기 십상이란 점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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