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저녁식사 후 나선 산보 길에 보도블록 사이에 떨어진 신용카드를 발견했다.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우체통에 넣기로 했다. 경찰서에 갈까 다시 그 자리에 놓고 올까, 이런저런 궁리하다가 나름 최선의 방법이라고 선택했다. 행동 목표를 정했으니 세부 방법은 내 기억을 더듬는 일을 시작했다. 평소 무심히 다녔던 동네의 구석구석을 머리에 떠 올려 보았다. 어딘가에서 빨간색 우체통을 봤는데 어디였더라...,
기억 속 영상에서 장소를 찾았다. 아파트 건너편, 산보를 시작해서 돌아오는 코스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이 남았던 빨간색 우체통의 위치에 가보니 그 자리에 있었다.
편지를 담는 우체통에 신용카드를 담는다. 더 나은 방법이 있더라도 지금은 이 방법이 최선이다. 스스로에게 격려했다. 어쩌면 카드 주인은 이미 카드 정지시키고 미련 없이 카드를 떠나보냈을지도 모르지만 안절부절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주인에게 잘 도착하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우체통에 넣었다.
우체통이 본래 품는 편지와 낳선 이방인 신용카드는 의외의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로 둘 다 직접 손수 자신이 쓴다는 점이다. 편지는 마음을 손을 통해서 글로 적어 전하는 방식이다. 누구도 아닌 내 이야기와 상대방을 위한 내용이니 남이 대신 쓰는 일은 없다. 신용카드도 마찬가지다. 지갑 속에 들어있는 카드는 손수 결제하는 용도로 쓰지 남들에게 빌려주는 일은 드물다. 두 번째로 둘 다 쓰면 쓸수록 쌓인다. 편지는 서로의 정감이 쌓인다면 카드는 빚이 싸이는 것은 다른 면이지만.
세 번째, 편지도 카드도 내용을 공개하기 쉽지 않다. 편지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간의 지극히 개인적인 소통의 도구다. 카드 사용내역도 개인의 삶의 패턴이나 동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내밀한 면이 있다.
주은 카드를 넣으려고 찾은 빨간색 우체통은 어둠 속에 묵묵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변에는 분리수거된 쓰레기봉투들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조금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 왜 이런 모습일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근 몇 년, 십 년 어쩌면 더 오래 동안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어본 기억이 없다. 편지는 연애편지라고 정의한다면 명맥이 끊어진 건 학창 시절, 더 정확하게는 대학교 2학년 군 입대해서 재대한 시점이 손편지의 맥이 끊긴 시점이다.
편지 한 번 써 볼까?
누구, 에게 쓸 까
잠시 생각에 잠기는 순간, 흑백영화 속 한 소년이 버스 정거장에서 수줍게 편지를 소녀에게 건네고 있다.
우체통에 넣지 못한 건 '주소도 이름도' 몰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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