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 날리기
2020년 10월 1일, 추석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친가와 처가 어른들께 전화를 드렸다. 색다른 추석이라서 찾아뵙지 못하고 전화로 안부를 대신한다고,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내일로 종식될 상황도 아닌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풍속도를 하나 그렸다.
점심 전에 집에서 나와야 한다. 방심하면 하루 종일 TV의 유혹에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이어트하는 이 앞에 소고기와 책상 위에 핸드폰을 두고 공부하는 상황과 같은 급의 초인의 의지가 필요하다. 의지를 탓하느니 환경을 바꿔서 자연스럽게 유혹을 벗어나는 상황을 만들기로 했다.
마포에 문화비축기지라는 곳을 우연히 서울시와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초기에 한두 번 가보고 너무 좋아서 너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비상금 빼서 쓰듯이 갈 곳, 즐길 곳이 바닥이 날 때 한 번씩 쓰는 치트키 같은 장소다. 박정희 시대에 비상 석유를 비축하던 곳이라서 민간에게 노출되지 않던 공간이라서 잘 보존되어 있고 아직도 덜 알려진 공원이다. 초기에는 전시도 진행했고 최근에는 야외에서 다양한 공연을 진행했는데 코로나 시국에는 이마저도 중단됐지만 그래도 도심에서 갈 수 있는 공원 중에서 가족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바로 앞에 상암 월드컵경기장이 보이는 자리에 위치해서 서로 보완적인 코스로 사용되기도 한다. 상암 쪽에서 걸어서 너머 올 수 있을 정도로 지근거리에 있다.
잠자리채, 독수리연, 킥보드, 자전거 그리고 돗자리와 의자 차 트렁크에 평소에 가지고 있는 그대로를 풀어놓고 시간을 보냈다. 햇살이 쨍하지 않아서 되려 뛰어 놀기 적절했다. 잔디에서 공놀이하고 잠자리 잡고 킥보드 타고 다양한 종목을 하고 나니 오후가 지나갔다. 하루, 10월의 첫날이자 추석을 알차게 보낸 거 같아서 만족스럽다.
석유 비축하던 장소가 이제 문화 비축하는 곳으로 탈바꿈하는 건 이용자들의 몫이었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한 하루였다. 독수리연을 날리려고 1시간을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잘 날지 않더니 불과 10분도 안돼서 얼레에 감았던 실을 모두 풀어낼 만큼 연이 높이 날았다. 바람이었다. 날이 맑을 때 바람 한 점 없어서 자전거 추진력으로 날려는 사람처럼 무모한 도전을 했는데 어느 순간 하늘이 흐려지더니 바람이 불어서 엔진단 비행기처럼 연이 쭉쭉 하늘로 올라갔다. 꾸러미 두 개를 엮어서 만든 실이라서 길이가 200미터는 더 되는데 실이 다 풀렸다.
연이 높이 높이 먹구름 사이로 날아오를 때 아이보다 더 좋아했다.
다리도 풀리고 실도 다 풀렸다.
몸도 마음도 술술 잘 풀린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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