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부자면 좋겠어". 생선 가시 뱉어내 듯 무심히 말했다. 평소에는 직장생활 15년 차 워킹맘의 넋두리라고 가볍게 지나쳤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내 목에도 가시가 걸린 것 마냥 껄끄럽다. 가슴속 어디쯤이 살짝 아려오는 느낌이다. 날마다 몇 벌 안 되는 옷으로 다른 듯 매칭하고 어색하지 않게 '꾸안꾸'해야 하는 현실이, 심연에 있는 '불만'을 끄집어낸 것이다. 사실 옷 방을 따로 해서 옷이 넘쳐날 만큼 많고 싶단 말이 아니란 건 우리 둘 다 안다. 옷을 없다고 하지만 시간이 없고 마음에 드는 걸 못 찾아서 안 사는 편이지 살 수 없어서 못 사는 게 아니다. 순간 '우리 부자야 왜 그래'와 '그래 나도 부자면 좋겠어' 중에 가볍게 공감하는 편을 택했다. 아내도 내가 이렇게 말할 걸 안다. 일, 이 년 차 부부가 아니니까. 그냥 넘어간 준다. 고맙게도
지금 살고 있는 이 아파트는 '내가' 아내에게 선물한 '생선'이다. 물론 내가 통 큰 선물을 한 냥 치장하지만 실은 어차피 이사해야 했는데 조금 빨리 특정한 시점- 아내의 생일-에 구매를 수행한 것뿐이다.
3년 전 그날도 오늘처럼 아내는 작은 생활 속 푸념을 했다.
"얼마 안 있으면 생일인데 나이 먹는 게 우울해" 우린 8살 차이가 난다. 내가 그 나이면 날아다니겠다는 꼰대 성 대꾸를 할 뻔했는데 다행히 대답은 삼키고 그냥 묵묵부답으로 출근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10년이나 젊은 청년 같은 낭랑한 목소리로
"내가 이번 생일에는 거하게 쏠게. 뭐 필요한 거 없어?" 마음속에 책정한 예산은 '잇백' 정도였다. 차를 사달라 하겠어 집을 사달라 하겠어. 평소에 살까 말까 하던 재테크가 된다는 그 '가방'정도겠거니 했는데.
"집사 줘"
" 응? 집?.... ", 잠시 정적 후 "그래, 알았어" 이 순간을 모면하겠다는 얄팍한 전략이었다. 일단 긍정의 답을 한다. 하지만 그때 그 순간이 현재 우리 집 장만의 시작일 줄은 생각 못했다. 아내와 나 둘 다 해본 말이고 그냥 한 번 대꾸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말은 나를 천상의 조각가로 만들었다. 사방에 보이는 건 조각의 재료들이 보였다. 평소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던 아파트 분양 전단지가 보이고 네이버 부동산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맞춤 맞게, 살고 있던 아파트 건너편에 새 아파트 분양 전달을 발견했다. 시기도 딱 맞았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전세가 끝나는 시점에 바로 입주가 가능했다.
단순하고 무식하게 그 아파트를 분양 신청했다. 운 좋게 됐다.
나는 부자인가? 모르겠다. 지금 나에겐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물론 모작)을 걸기 위해, 눈치를 안 보고 못 박아도 되는 주방 벽이 있고 뜬금없이 답답한 마음을 날리고 싶을 때, 박찬호 공보다 빨리 달리는 3700cc 애마도 있다. 100세 인생의 희망인 연금도, 충분하지 않지만 있긴 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10년을 갚아도 끝나지 않는 빚도 있고 내 나이 환갑에도 고등학생일 아들이 있다. 이 마저도 긍정 마인드로 보면 신용과 담보의 상징이며 오래도록 현역으로 있어야 하는 원동력으로 보며 산다.
거친 표현으로는 속물이고 좀 완화하면 현실주의자쯤 된다. 마음이 부자면 부자라는 말보다는 곳간에서 인심 나고 부자는 마음도 착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산다. 적어도 나의 삶의 궤는 이 신념을 바탕에 깔고 살고 있다.
가난하게 태어난 건 선택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건 선택의 결과라면 마땅히 책임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물질은 없고 정신만 부자인 나보다 물질과 정신 모두 부자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