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핸드폰 너에게
2040년 한 방송국에서 추억의 그때를 소환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이번 회에는 2020년을 추억하는 영상이 나오고 있다. 그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사춘기 여드름처럼 자연스럽게 장착 했던 물건이 하나 등장한다. 마스크다. 19년과 20년을 구분 짓는 명확한 소품은 하얀색 마스크를 쓴 시민의 모습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시대와 물건이 뼈와 살처럼 일체감 있게 들어맞는 예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마스크 이전과 마스크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존재하는 듯하다. 이어지는 영상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나온다. 지하철, 버스, 자동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하나를 응시하고 있다. 심지어 운전하는 사람들도 전방 응시하지 않고 시선이 옆에 물건에 가 있다. 바로 핸드폰이다.
지금 2020년 마스크를 하고 폰을 사용하는 시민 중 한 명이 바로 나다. 이 사람에게는 핸드폰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이용시간을 알려주는, 그냥 알려만 주는 객관 정보 제공을 너머서 '너 정말 뭐 하는 사람이니?'라고 질책하는 상사처럼 사용한 앱과 사용시간을 보여주는 앱이 있다. 지난주 이용시간이 일일 평균 6시 12분이다. 네트워크는 되지만 혼자 고립되어 있는 사람의 기록이라면 하루의 1/4을 보냈다는 사실이 수긍이 간다. 하지만 9 to 6가 기본인 직장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시 묻는다.
'대체 너 정말 뭐 하는 사람이니?'
분명 업무로 통화하고 메신저 하고 서핑도 했다. 하지만 많이 쳐 줘도 라면 한 그릇에 한 젓가락 밖에 안된다.
덕분에 미안한 건 순진한 목이다. 주인의 잘못된 습성 덕에 '악'소리 한 번 못 내고 다른 기관보다 먼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컴퓨터 쟁이로 살면서 무수한 나날을 꾸부정하게 모니터를 응시해서 목을 빼놓더니 급기야는 핸드폰을 보느라고 무거운 머리를 억지로 지탱하게 했다. 정말 내가 목이라면 목놓아 울었을게다.
의지는 박약하나 스스로를 그래도 객관적으로 보는 편인지라 제버릇 남주지 못하는 걸 잘 안다. 극단적으로 이제 핸드폰 안 보고 살자는 결심이 얼마나 공허한지 알기에 빠져나갈 수 없는 올가미를 스스로에게 놓기로 했다. 내 목은 소중하다. 우선 핸드폰과의 관계를 조금 소원하게 하기를 했다. 첫째로 알람 끄기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알려주는 알람은 중요도와 별개로 관심을 앗아가고 집중을 흩트리는 최고의 적이다. 소리나 진동을 끈 상태라서 전쟁으로 치면 유격전은 아닌데 고도의 심리전 같은 전투다. 화면에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알람이 더 궁금하게 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어떻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나. 그러니 아예 모든 알람을 끈다.
두 번째는 다시 한번 물리적 차단을 한다. 어느 연구결과에서 나온 걸 보면 핸드폰이 시야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집중력이 흩어진다는 결과가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핸드폰에게도 적용되는 명언이다.
의지보다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실행 무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게으른 몸이다. 눈에 안 보이고 멀리 있으면 분명하게 핸드폰과의 친밀도가 떨어지는 효과를 낸다. 검증된 방법이다
더 이상 핸드폰에 고개 숙이지 않으려는 한 없이 미약한 결심의 보호막이다.
나, 고객 빳빳하게 들고 핸드폰에게 말한다.
"나는 너의 주인이다."
#hanxs #핸드폰 #거북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