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은 실수 두 번째는 고의?
보통의 점심시간은 함께 먹는다. 직장을 오래 다니다 보니 직장인의 꽃, 점심시간에 대한 감흥이 예전만큼은 아니라도 즐거운 시간임은 분명하다. 우리 회사 점심시간은 12시 30분이다. 12시에 번잡함을 피해서 조금은 여유를 갖자는 취지고 또 하나는 출근 시간이 9시 30분까지 이니까 자연스럽게 30분 이동한 결과다.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 회사 건너편에 쿠팡 물류센터가 랜드마크처럼 버티고 있다. 최근 2년 사이에 쿠팡물류센터만 덩그러니 있던 이 동네가 새로 만들어진 건물들로 북적북적해졌다. 상전벽해? 까지는 아니고 번화한 도시의 느낌이 물씬 난다.
내 집에서는 아인슈타인도 전문가로 인정받기 쉽지 않은 이치로 회사가 있는 건물에는 마땅히 맛집이 없다. 가끔 외부 손님들은 맛있다고 하는 식당이 있지만 우리, 원주민들은 맛과 향과 분위기 모두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다. 그래서 가급적 건물 밖으로 새로운 풀을 찾아 떠나는 양 떼처럼 떠난다.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신선하고 향기로운 맛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서.
그날은 같이 먹던 동료가 손님이 와서 같이 식사를 가는 바람에 혼식 해야 했다. 버림받은 건 아니지만 반 정도는 그런 느낌이 든다.
오히려 좋다. 이럴 때 내가 먹고 싶은 메뉴로 먹어보자고 위안했다.
'음, 뭐가 좋을까?'
머릿속으로 메뉴를 펼쳐보니 순댓국, 해장국, 설렁탕, 칼국수, 짜면 등등 다 일주일 사이에 먹었던 메뉴들이다. 다시 순환하는 메뉴의 덫에 빠진 듯하다가 순간 하나 떠 오른 게 있다.
'미역국'
내게 미역국은 조금 특이한 녀석이다. 소울푸드라고 하기엔 좀 그래도 마음이 허전하거나 나를 위해 보상해 준다는 개념이 담긴 음식이다. 서오릉 방면, 서울에서 고양으로 넘어오는 길에 한 번 먹었던 기억이 난다. 넓은 주차장도 좋고 친절한 사장님에, 무엇보다 뚝배기에 나오는 미역국은 진국이었다.
요사이 얄궂은 날씨와 허전함 마음과 엄마가 보고 싶은 생뚱맞음이 어우러져서 허기가 진다. 그래 이럴 때는 뜨거운 국물이 제격이다. 서오릉 가는 길에는 추어탕집, 돈가스집, 칼국숫집, 불고기집, 빵집, 장작구이집, 짬뽕집 등등 서울의 접경이면서 교외 분위기를 주는 맛집이 많다.
1시가 가까운 시간이라 주차하고 식당으로 들어갔을 때는 테이블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리 잡고 있었다. 기다릴 정도는 아니지만 빈자리가 서넛 정도밖에 없어 조금 늦었으면 기다려야 할 정도다.
혼자 왔다고 손가락으로 그리고 조용한 말로 전하고 구석에 1인용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빈자리를 치우는 손길이 바쁜 분과 눈 맞춤을 하려고 시선을 보내는데 빗나간다. 이제 적응이 될 만도 하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혼자 식당에서 밥 먹기다.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빈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게 편하지는 않다. 드디어 한 분이 물병을 오신다.
"소고기요"
"... 네.."
소고기미역국은 메뉴판에서 세 번째에 있다. 황태 미역국, 가자미 미역국, 전복 미역국 다 맛나겠지만 황태나 가자미는 별로, 전복은 좀 거하다 그래서 무난한 소고기 미역국을 주문했다. 이내 내 주문을 받은 분이 수레에 담긴 찬을 테이블에 자리해 줬다. 김치, 간장조림한 메추리알, 묵, 된장에 무친 배추 등 정갈한 한상이다. 본식이 나오기 전 시간은 예의 유튜브를 본다. 요즘 이슈가 되는 ChatGPT 이야기가 메인이고 간간이 들리는 옆 테이블의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남자분 둘이 나누는 자식 걱정하는 소리도 사이드 메뉴다.
보글보글 소리가 나는 미역국이 나왔다. 뜨거운 미역을 접시에 덜어서 먹으려고 뚝배기에 젓가락을 깊이 넣었다. 미역과 함께 뭉텅이로 잡히는 건더기가 있다.
? 가자미다. 소고기가 아니고.
그제야 주문지를 봤더니 가자미로 선택된 걸 발견했다.
"저기요, 저 소고기 시켰는데요"
가자미 미역국을 가져올 때보다 2배 빠른 속도로 되가져 갔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말을 남기고.
그사이 다시 메인 음식과 사이드 메뉴로 허기진 영혼을 달래는 동시에 세팅된 찬을 하나씩 먹으면 육체의 허기도 함께 달랬다. 5분... 10분 먹다 보니 빈 접시가 두 개나 되고 양이 반으로 준 접시가 두 개다.
드디어 소고기미역국이 나왔다. 뜨거운 국물을 허겁지겁 떠먹느라 입천장에 허물이 생길 정도로 맛있었다.
한 가지 소고기만 있는 게 아니다. 점복이 하나 들어 있었다. 조금 이상했지만 두번째 실수는 그냥 넘어갔다.
계산대에서 카드를 내밀자. 사장님이 한마디 하신다
"잘 드셨어요? 주문이 바꿔서 죄송합니다. 제가 전복 하나 넣었습니다"
"아, 그랬군요? 물어볼까 하다가..."
사장님의 서비스 덕분에 더 맛있는 '소고기전복' 미역국을 먹었다. 국물만큼 서비스도 진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