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보다 더 까칠한 어른이란다

아이를 위한 무균실은 어디에도 없다

by 한여름

예전에 어떤 칼럼에서 자동차 뒤에 붙어있는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문구를 읽으면

웃음이 나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더 까칠한 어른이란다.'라고 생각한다는 문장을 읽었다.

그 문장을 가끔 생각하게 되는 건 내 직장 생활이 그런 생각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이 일종의 서비스직에 가깝다고 느낀다.

학생과 학부모는 고객님이고 나는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어떤 직종이나 진상은 있다고 생각하면서, 또 어떤 직종이든 고유의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아서

내 직업이 가진 어려움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고, 별로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건 이따금 어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결함이나 실패와도 같았고

말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괴로움이 될 때가 있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요구 혹은 신세 한탄, 의미를 알 수 없는 민원 전화는 웬만하면 그냥 들어준다.

근데 그게 알겠다,라는 대답은 아니다.

그냥 아 네 그러셨군요, 안타깝네요, 정도의 제스처다.

들어주는 것 자체도 어려울 때가 있지만 거기까지가 내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다.

하지만 요구를 ‘진짜’ 들어주는 건 다른 문제다.

나는 그 민원이라는 이름의,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요구가 교실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실 운영 방침과 교육 방식은 오롯이 나의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요구사항의 대부분은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어떤 몫이라고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부모들은 아이에게 마치 수치심을 가르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아이들은 잘못을 하면 사과와 반성을 하고 다시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모른다.

그렇기에 언제나 나의 기분과 욕구, 나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고 그렇기에 규칙이나 타인의 마음은 항상 뒷전이 되어 내가 왜 그런 것 때문에 나의 행동과 감정을 통제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해본 적이 없기에 통제력이 없고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한다.


조금 삐딱한 노선을 타보자면,

그런 걸 ‘까칠한’ 아이로 포장하려 한다면 나는 그것보다 갑절은 더 까칠할 수 있는 어른이라는 것이다.


부모들은 가끔 학교생활에 대해 착각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항상 재미있고 행복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그런데 학교생활이 어디 그런가?

아니 삶이라는 게 어디 그럴 수가 있던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기다려야 하고, 함께 생활하기에 참아야 하고, 함께이기에 불편한 점이 있다.

함께이기 위해 지켜야 하는 규칙들을 가르치고 때론 나의 욕구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을 교육해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다.


지난주에는 아이가 학원에서 같은 반 친구에게 무리한 요구를 듣는 것 같다며 교실에서 교육해줬으면 좋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아이에게 거절하는 방법을 연습시켜야 합니다.

모든 상황, 모든 시간에 어른이 함께해 줄 수 없다는 걸 알고 계시잖아요.

내가 불편하고 싫은 것은 그 자리에서 거절해도 되고,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세요.

언제까지 그걸 어른이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제가 이야기하지만 가정에서도 함께 도와주셔야 합니다.

잠깐의 침묵 후 학부모는 그게 너무 어렵다고 대답했다.

당연히 어렵죠. 거절이 쉬운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래도 해야 합니다. 연습해야 하구요.


나는 어렵다는 그 말이 '거절을 연습시키는 게 어렵다'라는 의미인 것과 동시에

‘거절하는 방법을 배우며 아이가 받을 상처나 고난을 지켜보기 어렵다'는 이중적인 의미로 느껴졌다.

긴 변명 끝에 '선생님도 아시잖아요?'라고 동의를 구하는 물음에 물론 이해한다고 대답했지만,

동시에 그 부분은 전적으로 어른의 몫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었다.


물론, 나도 내 아이의 상처와 고난이 두렵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영역이잖아.

누구도 그렇게 살 수는 없어요.

우리의 역할은 상처받지 않고 클 수 있는 무균실을 만드는 게 아니라

상처를 받아도 그걸 겪어내는 힘이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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