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다정해지지 못하는 결함에 대해서
완벽히 고친다는 건 환상이고
그저 내 단점들에 지지 않고
잘 달래며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써본다.
인정하자.
나는 생각할 줄 모르는 아이를 좋아할 수가 없다.
가정에서 모든 걸 챙겨주는 게 익숙해서
혹은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혹은 귀찮아서
그 밖의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완수하지 못하는 아이.
방법을 설명해 줘도 듣고 싶지 않고
누군가 도와주고 해 줄 때까지 끝까지 버틴다.
그럴 때 나는 절대 도와주지 않는다.
“어렵지 않으니까 네가 스스로 해봐.”
“설명을 잘 들어.”
“친구들이 하는 거 보고 참고해 봐.”
시간이 오래 걸리면 수업 후에 남겨서 완성할 때까지 놔둔다.
그때쯤 통하지 않는다는 걸 직감한 아이는 어떻게든 해가지고 오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정말로 괜찮은 게 아니라면 쉽게 칭찬해 주지 않는다.
“아까보다 노력했네.”
“다음에는 색칠을 더 잘해보자.”
“해보니까 쉽지 않아?”
“가위로 똑바로 자르는 것만 연습하면 되겠다.”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정말 열심히 한 아이들을 칭찬한다.
그 아이들이야말로 칭찬받아 마땅하니까.
대충 한 것도 칭찬해 주는 건 부모님이 해주시겠지.
더 싫은 건 자기가 되게 잘난 줄 아는 아이.
그래서 제멋대로 행동하고 친구들을 함부로 대하며 아무 말이나 막 해도 된다고 여겨 교실을 엉망으로 만드는 아이가 싫다.
너, 뭐, 돼?
그럴 때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갖은 수를 다 써서
그 아이를 납작하게 눌러버린다.
가정에서 넌 유일한 아이로 사랑받지만
학교에서는 그저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일 뿐이야.
넌 아주 소중하지만 동시에 특별하진 않단다.
그걸 이해하고 조절한다는 게 어렵긴 하지.
어려우면 배워야지?
나는 원래부터 좀 차가운 인간이었지만
요즘 들어 빙속성이 더 강해지는 걸 느끼는데
이게 집에 와서도 깨지지 않는다는 게...
이 중에 제일가는 단점이다.
그러니까,
집에서 나는 교사가 아니라 엄마니까
못한 것도 칭찬하거나 격려해 주고
내게 유일한 아이로 사랑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될 때가 많다.
나는 내 자식에게도 똑같이 묻곤 한다.
너, 뭐, 돼?
그걸 나한테도 똑같이 물어봐야겠다.
너 뭐 되냐고.
그냥, 아무것도 재지 말고 따지지 말고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길 순 없는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