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되 진심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교사라는 직업의 어려움

by 한여름

1.

이 직업은 나라는 사람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게 된다는 점에서 자기반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흔히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이들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깎고 다듬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매일 아이들과 한 교실에서 지지고 볶는 건 여전히 좋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사실 대부분의 순간이 좋음에 가까운데 아닐 때는,

아이들의 모난 말과 다툼, 자비없는 이기심과 이유없는 무기력과 맞서야 할 때가 그렇다.


그 지점이 왜 내게 어렵냐면

나는 지금껏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직업은 그 무관심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의 관심을 당연히 요구할 자격이 있고

나 역시 세심하게 챙겨야 할 의무가 있다.

오늘은 기분이 어때? 주말은 잘 보냈어?

무슨 일이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도와줄까?

잘 하고 있어, 노력하고 있다는 거 알아, 고마워.

그렇게 지금껏 타인에게 진심으로 궁금해본 적 없는 질문을 하고 때로는 진심으로 격려하면서

이건 오히려 내 안에 비어있는 부분을 조금씩 메워가는 과정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매순간 어른으로 있어야 한다는 점도.

어른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내가 어른이라는 걸 크게 인식하지 못하는데

아이들 사이에서는 나 혼자 어른이라는 게 지나치게 뚜렷하게 인식된다.

유치함에 똑같이 유치하게 굴 수 없고

무례함과 예의없음에도 끝까지 예의 있어야 하며

이기심에 나도 똑같이 이기적으로 답할 수 없는

그런 순간 순간들이 어렵다.

선생이기 전에 어른으로 존재해야하는 순간들이.

이미 어른이면서 뭐가 또 그렇게 어렵냐 싶으면서도

그게 진짜 어려울 때가 있어.


2.

나는 어릴 때부터 좀, 차갑고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노는 것보다 방에 틀어박혀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동생과 놀아주는 것이 너무 귀찮고 싫어서 마지못해 한 번씩 놀아줄 때면 조건을 걸어 그 애가 갖고 있는 것을 하나씩 빼앗아오는 매정한 언니였다.

친구들은 넌 방학만 하면 왜 연락이 안 되냐며 전화를 걸었고 나는 그 전화를 애매한 기분으로 받아 학교에서 보자는 인사를 어색하게 건넸었다.

좋은 친구들과 관계를 돈독하게 맺어나가는 것보다 내 안에 엉켜있는 것을 풀어내느라 매일 힘겨웠는데

지나고 보니 오히려 친구들과 엉킬 수 있는 인간이었다면 내 안도 그렇게 꼬일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이러니한 사실도 깨달았다.

동시에 나는 결코, 누군가와 ‘엉킬’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도.


나는 여전히 사람들과, 우스꽝스럽지만 나 자신과도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고

그래서 누구도 아주 가깝게 느끼지 않는다.

그 간격에는 어쩔 수 없는 관찰과 평가, 검열과 판단이 뒤따라서 피곤하고 지치는데

그건 스스로에게는 아니지만 내 직업에는 좋은 점일 때도 있다.

규칙에는 단호하고 감정에는 친절할 수 있다는 게,

아이들을 꽉 끌어안아줄 수 있지만 동시에 내가 너에게 마냥 편안한 사람은 아니라는 게,

그런 간격에서 오기도 하니까.


3.

그리하여 내가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

내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하고 있다 생각하지 말 것.

그러니까 적게 말하고 많이 들을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 말 것.

무수히 많은 정답 중에 하나라고 생각할 것.

아이가 어른인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고, 혹은 열심히 하면 누군가 고마워할 거라고 기대하지 말 것.

그래서 진심이되 진심이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되 다정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