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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yo Apr 23. 2022

춤 사절단

꿈 드로잉 02 


집 앞 마당에 가족들과 함께 서 있다가 어지럼증을 느낀다. 뒤돌아 내려가 집의 뒷문으로 나가니, 한 무리의 댄서들이 둥글게 춤을 추며 지나가고 있다. 내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친구가 준비한 것이다. 

정해진 안무나 틀이 갖춰져 있지 않은 자유로운 몸짓이었다.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으면서도 함께였다. 그중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클로즈업된 남자의 두 눈이 내게 잠시 머무르다 제 갈 길을 간다. 나는 묘하게 친구와도, 그 댄서들과도 거리감을 느낀다. 길에 서서 그들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멋진 생일선물이었으나-



저녁에 

실은 축하를 받은 기쁨보다도 그들을 따라가고 싶었던 거 같아. 



며칠 후에

계속 춤의 이미지에 매료되어 있다가 꿈의 앞자리가 둥실 떠올랐다. 여성의 꿈의 내리막길에 대해 이야기하는 팟캐스트*를 듣고 난 후였다. 의식하기 힘들만큼 얕은 내리막이어서 전혀 짚어지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정문에서 뒷문으로 내려가야 하는 주택 구조 설정이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왔다. 나는 왜 가족들과 함께 정문에 서있다가 어지럼증을 느끼고 내려와 뒷문으로 나온 걸까? 반층, 반의 반층쯤 되어보이는 얕은 계단이였다. 딱 그만큼의 아래에 뒷문이 있었다. 


정문에서 가족의 격려를 받으며 안전하게 집을 나서길 바라지말고, 내가 상정해뒀던 정상성의 틀에서 내려와 진짜 내 자리에서, 내 위치에서 집을 떠나라는 듯. 그것은 마치, 출근이나 여행, 혹은 보장된 유학길 같은 것이 아니라, 가출이나 탈출에 가까운 결심과 각오가 필요한 여정이라는 듯. 그들의 춤은 그저 생일 축하 이벤트가 아니라 떠나기를 독려함이 아니었을까. 그들을 따라가려 할 게 아니라, 혼자 길을 나서야 하는 게 아닐까. 나를 바라보던 그 차가운 시선으로 나의 자리를 다시 봐야한다. 선명한 인식. 그 길 위에서. 오로지 내 힘으로 발걸음을 떼는 것부터가. 




* 팟캐스트 <꿈 이야기, 천몽야설> 22.2.20 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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